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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Dec 10. 2024

틈에 대한 사색

한 글자로 된 순우리말 중에 '결'이라는 단어에 주목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의외로 한 글자로 된 순우리말의 수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한 단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삶', '꿈', '얼', '혼'...... 심오한 의미를 가진 단어가 한 글자이다. 단어들의 면면을 보면서, 자주 써야 할 말들을 쉽게 쓰라고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는 '틈'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그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 의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다 보니 여유가 부담스러워지면서, 빡빡하게 보내던 때의 '틈'이 생각났다.


요즘 틈이 많아졌다. 아니 틈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크고 넓어 주체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 틈이 차츰 공허감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역시 틈은 치열함 속에 있어야, 그 고귀한 가치가 살아난다. 글을 쓰는 것도 그 틈에서 더 잘 쓰였다는 느낌이다. 틈이라는 말이 사유의 공간에 들어왔을 때, 시간적 개념의 틈 만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겨를'과 같이 '시간적인 사이'로만 말이다. 하지만 더 가까이서 살펴본 '틈'에는 또 다른 의미가 더 있었다.


틈은 명사로서 네 개, 의존명사로서 한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에서의 사이, 기회라는 의미를 나타냈다. '틈이 없다.'라면 시간과 여유, '틈이 벌어졌다.'라면 간격이나 사이, '틈을 엿보다.'라면 기회의 의미로 쓰인 거다. 한 글자로 된 순우리말 중에서 틈이라는 말처럼 다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없을 듯하다. 아주 짧은 시간이나 작은 공간, 희박한 기회일 것 같은 틈, 실상 우리 인생의 모두를 좌우했다는 생각이 든다. 틈이 있었기에 숨을 쉴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었으며,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가을인 듯싶었는데, 늦가을도 없이 겨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첫눈의 낭만을 악몽으로 만들어버린 폭설과 때마침 다가온 한파가 엄동설한의 중심으로 데려와 버렸다. 외부와 닿아있는 모든 틈으로 들어오는 시퍼런 바람이 싫어진다. 이내 틈이란 틈은 샅샅이 찾아내어 꼭꼭 틀어막고 보이지 않는 온기를 반긴다. 그리고는 춘 삼월이 되면  따스함이 그리워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환호한다. 여기서 말하는 틈은 공간에서의 사이를 말한다. 이 틈은 때론 싫기도 또 어떤 때는 반갑기도 한 존재이다. 때론 틈이 벽을 무너지게도 하지만, 또 틈에서 새 생명이 움트는 영묘한 장면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틈이 사람 관계에서의 사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흔히 허물없는 사이를 좋은 관계의 표상으로 알아왔다. 과연 지금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단연코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틈의 크기가 작거나 큰 관계는 있을지언정, 틈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 아마 지금 사람 관계에서 틈이 없다면 서로 불편해하면서 멀어져 가기 쉽다. 여기서 틈은 일종의 '선'이라고 생각된다. 서로가 침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배려하려는 한계선과도 같은 것이다.


어릴 때는 빈틈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마치 빈틈이 있는 사람은 허접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말 같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최소한 사람 관계에서 빈틈없다는 말은 철벽을 치고 산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안하무인'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타인의 접근을 원천 봉쇄한 모습이다. 빈틈없는 사람은 박식하고 논리는 정연할지라도, 인간적인 정은 느낄 수가 없다. 틈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럼없이 다가와 편안하게 말을 걸 수 있는 길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사람 관계에 있어서, 틈은 필수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 요즈음, 틈이 너무 넓어서 고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틈을 엿보고 있다. 후자의 틈은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이다. 요즘 나름 배움의 기회도 갖고, 이후의 진로를 위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 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 것이다. 틈이 있으되 기회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 보내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틈이 온전히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의 홈메뉴 첫 번째에 [틈] 생겼다. 새로운 관점을 향한 시작을 위해, [틈]을 통해 생긴 관점의 균열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담았다. 시의적절한 주제를 통해 관점의 변화를 유도한 것에 대해 많은 호감이 느껴졌다. 틈이 기회가 되려면, 그동안의 정형화된 관점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인생항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점적으로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에 대한 관점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틈은 단순히 시간적 사이뿐만 아니라, 벌어진 사이와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각 틈마다 의미심장한 뜻을 가지고 있어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단어이다. 틈은 짧은 쉼이자 여백이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틈은 배려이자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이기도 하고, 저절로 오는 틈이 아닌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틈의 뜻마다 갖고 있는 의미를 적절하게 살려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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