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온 가을이 벌써 달아날 채비를 하고 있다. 목덜미 서늘하게 훑고 가는 바람으로, 이미 겨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었다. 이러니 가을을 좋아할 수가 없다.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만날 때마다 어색하다. 무덥고 긴 여름을 겨우 보내고 한숨 돌리는 중에 훅 들어와서,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는데 낙엽 흩날리며 발길을 재촉하는 모습이 못내 서운하다. 학창 시절, 좋아는 하지만 틈을 주지 않아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던 그 여학생이 문득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곁에 오래 머무르고 있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겨울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 되어보니, 부쩍 가을 보다 겨울을 좋아한 게 진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워, 애꿎게 겨울에 더 마음을 준 걸 거다. 또 다른 면에서 인생과 계절의 흐름으로 보면, 일치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름의 성취를 이루고 뒤돌아 보며 성찰하고 내면을 성숙하게 만들어 가는 인생의 시기, 그리고 씨 뿌려 키우고 열매 맺어 알찬 수확을 하는 계절, 너무나 걸맞은 면이 많다. 하여간 가을을 맞이하고 보내는 이 시간이 예사롭지 않다. 사랑스럽고 애틋한 마음에 더 길게 붙잡고 정을 주고 싶은 생각이 많아졌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며, 가을과 남자들을 연관 짓는다. 그러면서 남자들은 '가을을 탄다.'라고 표현한다. '타다'라는 말은 '어떤 감정이나 기분이 생긴다.'라는 의미인데, 남자들이 유독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의학적 근거가 있단다.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비타민 D 합성이 저하되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감소해서 우울감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제까지 가을에 별 감정을 못 느낀 나는, 무디고 무딘 감정의 소유자였다는 말인가? 이제라도 가을에 관심이 가는 것을 보니, 보통 남자로 돌아온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아내와 나는 시간만 나면, 어디든 걸으러 간다. 삼 년 전 시작했을 때는 주로 산을 갔는데, 요즘은 주로 평탄한 길을 많이 택한다. 무릎이 불안한 아내를 동반하기 위한 불가피한 변경이었다. 더구나 아내는 혼자서 운동하기 꺼리는 성향이라, 같이 가면서 독려하지 않으면 운동량이 절대 부족해진다. 이제 누구든 아프기 시작하면, 서로의 시간을 비참하게 만들 가능성이 많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이랄까? 그동안 서울 근교에 있는 수많은 수목원길, 둘레길, 야산을 돌아다녔다.
유독 짧아진 이번 가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쉬웠다. 아내는 운동량도 충족하고 가을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공들여 물색했다. 고르고 골라 두 곳을 다녀왔다. 먼저 우이령길, 일주일 후 구리에 있는 동구릉을 갔었다. 살면서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느끼면서 지나왔다. 그런데 이번처럼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전적으로 아내의 부단한 검색의 결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후에 다른 곳을 가더라도 이런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좋은 선택 덕분에 스쳐지나고 있는 가을의 옷자락을 붙잡고, 숲에서 가을을 읽을 수 있었다. 이 가을, 금방 빡빡한 도시를 벗어나 고즈넉한 숲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어 글을 올린다.
우이령길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잇는 길이다.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나뉜다. 우이령이라는 말은, 소의 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6.25 때 양주와 파주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피난했고, 이후에 미군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만들어 이용했다. 지금도 정상에는 탱크 저지용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어, 냉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8년 간첩 침투사건 이후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2009년 이후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개방되었다. 그러니까 가을에 맘먹었다고 아무 때나 불쑥 갈 수 없는 곳이다. 특히 주말은 예약을 위해 미리미리 움직이는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아내가 그날은 휴가를 신청해 놨으니 다른 계획을 잡지 말라고 했다.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우이령길을 예약해 놓고, 내가 못 가서 초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단속한 것이다. 그날, 나는 아내의 뒤꽁무니를 따라 우의령길을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출입인원을 통제하는 곳을 지나고 난 후, 나는 단박에 아내의 선택이 지혜로웠음을 알아버렸다. 우이령은 험한 등산로를 가지 못하지만, 가을 숲에서 평화롭고 조용한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는 최적의 코스다.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펼쳐지는 놀라운 색감의 향연, 가까이 보여 금방 다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 오봉, 작은 시냇물에서 나는 잔잔한 물소리는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교현까지 갔다가 다시 우이동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년 이맘때는 반드시 다시 오리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었다.
동구릉은 조선시대 왕릉을 모아놓은 곳이다. 말 그대로 도성의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무덤이다. 검암산의 작은 봉우리들이 동구릉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왕릉을 보호하고 있는 형국이다. 들어가는 입구의 배너에 쓰인 문구가 이곳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명의 왕에 대해 '3인 3색'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건국과 시련, 그리고 번영의 시대로 표현했다. 그들은 태조와 선조, 영조였다. 그야말로 흥망성쇠의 조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왕릉들이었다. 솔직히 나는 조선보다는 고려의 역사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어 역사공부를 할 생각은 없었고, 숲에 대한 기대만 가지고 갔었다. 여기도 일 년에 2번 2달씩만 개방하니까, 내 계획에 의해서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다음 날 북한산 등반 계획이 있어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일요일, 아내가 불쑥 구리를 가자고 한다. 날씨가 너무 좋으니 바람이나 쐬자는 게 이유다. 동구릉을 언급하기에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기도 하고, '릉'이라는 말에 무덤이 떠올라 께름칙했다. 한적한 구리시내를 걸어 다가간 동구릉 입구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주차장은 이미 만차가 되어 들어오려는 차들이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 서서 입장권을 사고 어렵게 들어선 동구릉은 별천지 같았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와 참나무의 엄호를 받으며 느릿느릿 걸어서 돌았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듯한 수목원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어, 또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백미라면, 원릉과 휘릉 구간 그리고 경릉과 자연학습장에 이르는 두 곳의 숲길이다. 그야말로 왕들만 누렸을 법한 비밀의 숲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점이 있다면 음식물 섭취를 못하는 것인데, 간단한 것은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주전부리를 먹다 지적을 받기도 했다. 도심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곳에 가을의 숲에서 천연치유제인 피톤치드를 맘껏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