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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공간

삶의 감정과 기억 저장소

by 버티기

지루하던 추석 연휴가 다 지나갔다.

시작 전의 기대 찬 흥분은 싸늘하게 식고, 어느 절 짜증으로 바뀌어 버렸다. 역시 적당히가 좋다. 길어도 너무 긴 연휴는 몸과 마음을 더 피곤하게 했다. 9월부터 가라앉은 기분이 아직 풀리지 않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거의 모든 날이 우중충한 분위기에 비까지 오면서 더 그렇게 만들었다. 연휴와 주말사이에 끼인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했었다. 입주한 회사가 모두 쉬는 바람에 휴일 분위기였고, 항상 북새통이던 엘리베이터도 텅 빈 채 쉬고 있었다. 한가로운 틈을 타, 연휴 중에 스쳐간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다.


연휴 중 기억이 뚜렷한 것은 두 가지다.

가족 식사 한 것과 아버지를 만나러 간 것이다. 가족 식사는 추석 다음 날이 내 생일이라고 주말에 앞당겨 모였던 거다. 이번엔 돈깨나 나올 법한 집에서 작은아들이 힘썼다. 연휴라 푸근한 마음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정겨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던 건, 추석 날 아침 출발해서 원주 아버지와 점심 식사하고 오는 거였다. 그날은 마땅히 외식할 장소가 없기도 해서 모든 음식을 준비해 가야 했다. 사실 아내는 연휴 시작과 동시에 모든 신경이 이쪽에 가있었다. 당연히 나도 다른 일정이 있을 수 없었고, 아내의 움직임에 집중해야 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기에 단순한 아버지와 식사 한 끼였지만, 준비는 쉽지 않았다. 부실한 치아를 고려해 부드럽고 영양가 있는 메뉴로 선정해야 했다. 재료 구입부터 신선함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조리시간 결정까지 신중한 선택이 필요했다. 물론 아내의 몫이었고, 나의 임무는 구입한 재료 다듬기와 주류 구입, 잔심부름에 응하는 정도였다. 차를 가져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어, 이번엔 고속버스로 가기로 해 담아가는 것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이렇듯 추석 이전의 모든 일정은 아버지와 만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단지 명절날 외롭다는 감정이 들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추석 전 날 다녀간 여동생이 문자를 보냈다.

집 안이 너무 어지러운데, 시간 없어 치우지도 못하고 갔다 했다. 부엌 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란다. 가끔 집에 가 본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가져간 음식을 조리하고 데워 내야 할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버지는 오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물품에 손도 못 대게 하고, 집안 정리에 관련된 간섭을 극도로 꺼려했다. 몇 번 시도했던 물품 정리와 청소, 도구까지 챙겨가 전등과 수전 수리를 하려던 것도 못하고 돌아왔었다. 가끔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장에 버려주고 오는 게 전부였다.


상상은 했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집 안 상황은 더 심각했다. 밥 상 놓을 자리 마련을 위해 빼곡한 잡동사니를 한참 치워야 했다. 여동생이 미리 귀띔을 주었던 부엌 쪽은 상상을 훨씬 벗어났다. 온통 검은 때가 덕지덕지 앉아있고, 언제부터인지 버리지 않고 쌓아둔 쓰레기들이 뒤엉켜 있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막막해하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쓴웃음만 짓고, 몸을 움직여 가져온 음식 내려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짐짓 모른 체 외면하고 TV에만 눈을 두고 있었다. 이럭저럭 식사를 마치고 부지런히 분리수거장을 오가며 쓰레기를 치운 후,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 눈을 감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아버지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에게 집은 삶의 일부고, 물리적 공간보다는 심리적 공간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듯 여긴다고 보인다. 감정과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물품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식들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마치 아버지에게서 그 감정과 기억들을 떼어내려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누구도 아버지의 마음 공간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나마 별도로 마련한 화실에서 마음의 비어있는 곳을 채우고 있는 듯했다. 생각의 끝에 다다르니, 통념의 잣대로 우격다짐해서 아버지의 공간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생각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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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숙제를 마쳤다는 생각에 표정은 평온했다. 그래도 준비에 공을 들였는데, 빛이 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매 번 같은 분위기가 반복되게 만드는 데 대한 무력감이 밀려왔지만, 어쩌지 못하고 아버지 공간의 의미를 이해시키는 데 그쳐야 될 것 같다. 나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지만 말이다. 언제쯤 가능할까? 정갈하게 정리된 널찍한 거실에서, 환한 웃음 머금고 세배를 받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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