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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이지 않은 AB형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행복하게

by 버티기
"AB형이라, 자기만 알고 이기적인 면이 있다."

며칠 전 아내에게 들은 말이다. 대화중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나름 다른 사람 입장에서 배려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듯한 의미의 말을 들으니 씁쓸했다. 더구나 아무 잘못 없는 혈액형까지 들먹인 단정적인 표현이 거슬렸다. 그냥 아내가 자상한 다른 남편과 비교한 일반적 의미의 말이라 자위해보려 해도, 마음속에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나를 잘 모를 수도 있다는 허망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추측하는 것은 일본과 한국에서만 성행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우리도 덩달아 영향을 받은 듯하다. 결론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ABO 혈액형 항원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지만, 성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답이다. 성격은 자라면서 환경과 교육 등의 영향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이 정확하다. 이런 속설에도 AB형이 '자기만 알고 이기적이다.'는 말은 없다. 유사한 것이 있다면,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감정 표현이 적은 편' 정도다.


혈액형은 헌혈 시 수혈 적합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AB형을 보면 특이한 혈액형이 분명하다. 모든 혈액형으로부터 다 수혈받을 수 있지만, 같은 혈액형에게만 줄 수 있으니까. O형이 모든 혈액형에 줄 수 있지만, 같은 혈액형에게만 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이것에 빗댄 표현이라면 '자기만 알고 이기적이다.'라는 말이 일리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항원, 항체의 반응에 따른 수혈 가능성에 국한된 것으로 성격과는 상관성이 없다.


사람을 만나면 MBTI를 물어보는 게 트렌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흔한 자기소개 방법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 서로를 간편하게 알아가는 방법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적, 감정적 소모를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MBTI는 태도지표와 기능지표 각 네 가지를 활용해, 총 16가지의 유형의 성격을 도출해 낸다. MZ세대 중에는 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이 성격 유형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나와 같은 세대들은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아 물어보는 사람이 드물다. 추측컨대 자신의 MBTI를 검사해 본 사람도 많지 않고, 유형별로 의미하는 것이 무언지 정확히 모를 것 같다. 나도 최근에야 검사를 해보고 ISFP임을 알아냈다. 목적은 단지 내가 이기적인 성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네이버의 AI 브리핑에서 설명하는 ISFP는, '말없이 다정하고 온화하며, 의견 충돌을 피하고 화합을 중시하는 호기심 많은 예술가 유형'이다. 어느 자료를 찾아봐도 '이기적'이라고 표현된 것은 없었다.


아내가 단정적으로 던진 말에 대한 반박거리는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한 것은 왜일까? 그건 아직 '자기만 알고 이기적인 면'이 없다는 걸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느낌은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 항변하면서 얼버무리고 지나갈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의 골로 발전하기 전에 나의 행동을 복기해 봐야겠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습성으로 전환하고, 귀를 열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파울로 코엘료가 '마법의 순간'에서 한 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멀리 있던 사람들도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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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해서는 피드백이 없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 하나 이미 질곡의 시간을 지나온 이 시점에서 너무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나를 위한 행동이 꼭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 이제 진정한 이타를 위한 이기로 방향을 전환해 나가련다. 아내의 말에 대한 반박거리를 찾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소득이 있었다. MBTI 검사를 통해 내가 '호기심 많은 예술가 유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예능 쪽에 항상 관심이 많았던 이유를 알았다. 삶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취미거리를 찾아 나서야겠다.



한국과 일본에선 AB0식 혈액형 분류법이 최근까지도 성격 파악 도구로 널리 쓰였다. 한국과 일본에선 AB0식 혈액형 분류법이 최근까지도 성격 파악 도구로 널리 쓰였다.

한국과 일본에선 AB0식 혈액형 분류법이 최근까지도 성격 파악 도구로 널리 쓰였다.



한국과 일본에선 AB0식 혈액형 분류법이 최근까지도 성격 파악 도구로 널리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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