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이와 어르신은 다르다
흐린 날이 지루하게 이어지다 모처럼 맑아진 날, 아내와 종로를 가려고 나섰다. 햇살샤워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버스를 타러 한참을 걸어갔다. 들뜬 기분으로 버스에 올랐으나, 같이 앉을자리가 없어 따로 뒤쪽 1인 좌석에 앉았다. 그때부터 엄청난 인내력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맨 뒷자리 앉아있는 나이 든 여성이 통화 중인데, 볼륨이 만만치 않았다. 시시콜콜한 반찬 이야기부터 집안 대소사를 거쳐 자식자랑까지 계속 들어야 했다. 쏘아보는 내 눈길과 몇 번 마주쳤지만 통화를 그만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애써 무관심하려 용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출근길, 공원을 지나는데 왼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풀숲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다툼이 있는 상황이 연상되었다. 그곳을 힐끗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풀숲이 드문 곳을 지나며 바라본 소음의 원인은 황당했다. 그곳에는 전화 통화를 하는 나이 지긋한 남자 한 사람만 보였다. 그때까지도 쌍스러운 욕지거리 섞으며 열을 내고 있었다. 그는 근처 벤치에 앉아 있거나 가로질러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침 맑은 공기 마시러 온 사람들의 귀속에 줄곧 쓰레기를 쑤셔 넣고 있었다. 가을 아침, 단풍이 시작된 공원의 평온이 형편없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십 년 넘게 잠수함에서 근무 한 덕에 소리에 엄청 민감하다. 은밀성이 생명인 잠수함 승조원의 직업병이다. 어디서든 조금 크고 생소한 소리가 나면, '뭔 소리야?'가 바로 나온다. 잠수함을 타고 있을 때야 유용하지만, 이제 감각이 무뎌져도 될 텐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때론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설비와 장비를 다뤄야 하는 빌딩 관리 일에서 유효성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전기실을 지나다 특이한 소리를 듣고 곧바로 달려가 빨리 조치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소리에 민감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쳐 문제가 더 커진 다음에야 허둥대며 처리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소리가 소음으로 변질되어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소리는 소리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질 때 고통은 시작된다. 소음은 '불규칙하게 뒤섞여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다. 소음도 처음에는 단지 소리에 불과했다. 이 소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대상에게 들리느냐에 따라 소음으로 변한다. 같은 소리가 소음이 되기도 하고, 소리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버스 안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들어야 할 의무 없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듣기를 강요했기에 소음이 되었다. 또 공원이라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맑은 호흡이 가득한 아침시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소음이 돼버린 것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소음 유발자가 공중도덕을 배울 만큼 배우고, 인생도 살 만큼 살았을 법한 나이대의 분들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 인생경력이면 공공장소에서 소음 최소화는 매우 중요한 에티켓 중에 하나임을 충분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 정작 피해자들은 극도의 불편함에도 직접 소음 유발자에게 시정을 요구하지 못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있거니와, 애초 상식이 없음이 드러나는 사람과 엮이기 싫은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면, 남 일 같이 않아서 무척 신경이 예민해진다. 몇 번 나서서 제지 의사를 전달한 적도 있었지만, 더 기분만 안 좋아지는 반응을 봐 왔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필경 자신의 목소리 톤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것 같다. 아마 단 둘이 대화를 해도 주변 사람들이 다 경청하게끔 만들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목소리 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어르신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품격을 지키는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늙은 이와 어르신은 무조건 같지 않다. 으레 늙은 이와 어르신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출발된다. 더 이상 나이 든 사람의 소음으로 인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불편해하는 장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