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의 힘을 맛보다

엉클어진 실타래 풀기

by 버티기

'발품'은 걸어 다니는 수고를 말한다. 부동산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은 사람들의 비결에 종종 '발품'이 등장한다. 효율성보다는 몸을 써서 결과를 얻어내는 1차원적 업무방식 뉘앙스를 풍긴다. 건물 관리 업무의 경력이 일천한 내가 이 '발품'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기업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해, 부침이 많았던 빌딩에서 근무하고 있다. 소유자가 여러 번 바뀌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 사이 빌딩의 나이는 삼십 년을 훌쩍 넘겨 버렸다.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도 자연 노후를 감당하기 어려운데, 잦은 공백기와 부실한 관리로 아픈 곳이 많아졌다. 그건 인계 유지되는 관리 자료의 질과 양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도면의 경우는 정도가 심했고, 건축 당시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는데 상당한 애로를 겪는다. 필요에 의해서 리모델링을 했으면, 관련된 자료가 유지되어 참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작년 마지막 분기부터, 관리회사는 관리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했다. 자산관리 시스템의 처리 항목이 대폭 늘고 절차가 까다롭게 바뀌었다. 전 건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확인하고 사진을 남기는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제대로 절차를 밟으려면 반나절은 족히 이것만 해야 할 정도였다. 사실 다른 일만 해도 시간이 빠듯한데, 추가된 이 절차를 규칙대로 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주일째 해보니 현타가 왔다. 갈등에 휩싸였지만, 좋은 면만 보고 우직하게 진행했다. 그 좋은 면이란, 따로 순찰 돌지 않아도 구석구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반대급부적인 효과라고 생각되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모두가 스노우 멜팅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겨울철에 도로가 결빙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 하부에 발열체를 매설하고 온도와 습도를 감지하여 자동제어하는 방식이다. 근무하고 있는 빌딩은 지하 3층까지 곧바로 이어진 가파른 주차장 입출구에 적용되고 있다. 사실 작년까지는 다른 관리주체에서 운영을 담당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겨울 시작 때 혼선이 있고 난 후부터 우리의 일이 되어 버렸다.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전원 공급 비정상으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경험자에게 문의도하고 도면을 들여다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기온이 급강하하면 시스템을 작동해야 할 의무가 있는 기사들이 나에게 문제해결을 독촉했다. 별수 없이 혼자서 중간 분전반의 위치를 찾아다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불현듯 의심되는 곳이 생각났다.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이게 왜 이곳에 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다. 달려가 커버를 뜯어내고 전압을 체크했다. '유레카'를 외쳤다. 불량한 차단기를 교체하여 정상 가동 가능토록 만들었다.


다른 일은, 스노우 멜팅 시스템과 관련된 전기요금 문제였다. 과다하게 부과된 전기요금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었다. 민원인은 엑셀 계산식에 들어간 수치를 가지고 문제를 삼았다. 인계받은 것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근거를 들이대지 않으면, 민원인에게 시달릴게 분명했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엑셀 시트에 구멍이 날 정도로 들여다봤지만, 답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배전반 캐비닛 뒤쪽에 있던 계량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생각이 났다. 똑같은 수치가 들어간 곳의 계량기 리스트를 들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확인했다. 또 한 번 '유레카'라는 단어를 찾았다. 민원인에게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눈이 내린 다음날, 출근하면서 지하주차장 입구와 출구를 돌아봤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 위의 눈은 말끔히 녹아있었다. 스노우 멜팅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꼭 필요한 시기에 가동할 수 있게 되면서, 전기요금 폭탄 예방도 가능해졌다. 엉클어진 실타래가 풀리면서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배가되었다. 실타래가 풀리게 된 계기는 우직하게 진행한 발품의 역할이 컸다. 만약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절차를 문제 삼아 편법을 찾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다면 어땠을까? 시간은 벌어 좋았겠지만, 발품의 힘은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때로는 우직한 길이 정도가 된다. 정해진 답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선택이나 행동이 오히려 가장 올바른 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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