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마력
서재로 쓰는 방의 집기류 배치를 다시 했다. 얼마 전부터 그 방에 들어서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전부인데, 그 후로 잘 가지지 않았고 가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불현듯 마음이 동해서 시작했지만, 딱히 구상이 없었던지라 쉽지는 않았다. 정리하면서 필요 여부가 불분명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는 신간 도서였을 것 같은 책들과 자격증 공부하면서 쌓아놓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침 아내가 들어서며 한 마디 했다. "저기 쓸데없는 책들은 이번 기회에 다 버립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책은 버릴 수 없었다. 그 언젠가 읽어야만 되는 숙제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아내의 눈총을 뒤로한 채, 책꽂이를 더 사다가 별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다 보니 거의 절반이 잠수함 함장 시절에 샀던 것이다. 장기간 경비임무를 수행하러 나가면, 수중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에는 책이 적격이었다. 욕심부려 챙겨가고는 읽지 못하고 가져온 것이 꽤 많았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큰 글씨로 '경청'이라 박혀있고, 엄마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채 대화하는 그림과 작게 '마음을 얻는 지혜'라고 쓰여있었다.
기억을 되돌려 보니, 아들과의 소통 갈증으로 '경청'이라는 책을 골랐었다. 다른 책에 밀려 홀대받는 바람에 지금까지 읽히지 못했다. 이번에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때와 또 다른 감정이다. 요즘 들어 사람 관계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과감한 정리와 발전적 유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끌려가는 우유부단이 싫었다. 혹시 관계를 성숙시켜 나가는 데 있어 내가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의심되기도 했다. 왠지 '경청'이 해결사 역할을 해줄 것 같았다. 제목은 교양서 냄새가 나는데, 의외로 소설인 것도 끌리는 요인이었다. 다음 날 '경청' 읽기를 정주행 했다. 정독 모드로 한달음에 달려 본 책은 처음일 것 같다.
주인공은 평소 남의 말을 듣지 않아 이토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다 병으로 청력을 잃어 정말 듣지 못하게 되면서, 오히려 상대의 말을 잘 듣게 된다는 줄거리다. 말은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경청'의 진정한 의미는, 독순술을 가르쳐준 구박사가 "온몸의 신경을 상대의 입술과 표정, 태도에 집중해 들어야 한다."는 말과, 조난당했을 때 만난 노인이 "남의 말을 들으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에 다 담겨 있다. 즉, 말하는 것보다 경청하는 태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관계를 바꾼다는 것이다.
연말에 모임이 많았다. 가고 싶어 하는 모임이 있는 반면, 단지 의무감으로 가는 곳도 있다. 그 선호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이 가면서 바뀌기도 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모임의 성격보다는 만나게 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같은 모임도 그때 모임 참석해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가 좌우한다. 올해 모임들을 참석하고 나서는, 유독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다. 확실한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져 간다는 것이다. 이번에 참석한 모임에서는 최대한 말을 줄이고,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하여 듣고 유심히 관찰만 했었다.
'경청'을 한달음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연말모임에서 느낀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준비하느라 생각을 모으는 모습이었다. 상대의 말이 아닌 주변 상황이나 움직임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기도 했다. 심지어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끊고 자기 말을 하기 일쑤였고, 노골적으로 경청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대화는 공전되기를 반복하였고, 서로를 더 알아가는 성숙단계로 진입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경청'은 단순히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의 의미를 넘어, 상대방의 말과 그 이면의 동기와 감정을 공감하며 주의 깊게 듣는 태도까지를 포함한다. 하나 현실은 귀 기울여 듣는 것조차 버겁다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니 나도 번번이 그랬다. 얼마 전 후배와의 만남에서도 내가 시종 고리타분한 레퍼토리를 읊었던 기억만 있고, 후배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러니 관계가 성숙될 리 만무하다. 비슷한 연배들을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추측컨대, 자신의 경험이 더 진하고 충분하다는 만용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가 성숙되려면, 우선 자신을 낮추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빈 마음이 되어 나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내려놓아야 된다. 상대방이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 내면에 깔려있는 동기나 정서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최고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내가 듣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면, 상대방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버려 버리라고 성화하는 책들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다. 성숙한 관계를 위해 나의 습관부터 돌아보아야 할 의무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