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다

돌아보고 헤아려야 하는 이유

by 버티기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다. 강사는 익살스러운 표현과 위트를 섞어가며 쉽게 설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심장압박 실습용 마네킹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웃음 머금은 채 농담 주고받는 모습들이 보인다. 시종 가벼운 분위기에서 교육은 끝이 났다. 그렇지만 난 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를 허투루 흘리지 못했고, 미소조차 띠고 있을 수 없었다. 왜 이 교육을 받아야 하고, 절박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은 점심식사 후 휴식시간, 무선 인이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이를 닦고 있었다. 전화벨이 노랫소리를 멈추자 짜증이 밀려왔다. 어쩌겠는가? 입주민 민원 처리가 주임무인 사람이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유로운 전화응대에 화가 난 듯 높은 톤으로 다급하게, "사람이 쓰러졌어요. 1층 데스크로 빨리 와주세요." 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를 물어볼 게재가 아닌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입 안의 거품을 황급히 뱉어낸 후, 한 번 헹궈내고 급하게 달려갔다.


계단을 한 달음에 달려 올라, 식사 마친 후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헤치며 데스크로 다가갔다. 입주사 보안요원 한 사람이 데스크 안쪽 좁은 곳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고, 다른 요원은 전화기 들고 어딘가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쓰러진 사람은 우리 보안직원이었고, 상황 처리를 주관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119에는 이미 신고되었음을 확인하고, 윗사람과 보안팀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119 구급요원이 도착해서 심폐소생술을 이어갔고, 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의식은 여전히 없었지만, 호흡과 맥박이 돌아오자 구급차에 옮겨 싣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 긴박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자리를 정리하며, 차가운 바닥에 누워 구급요원의 압박에 흔들리던 몸과 반쯤 뜨여진 눈 속 움직이지 않던 눈동자가 생각났다. 오분도 넘은 시간이 경과되자, 잠깐이지만 비관적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조금 전까지 안내 데스크라는 일터의 삶 속에 있다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까지 가 있는 모습 같았다. 이제 불혹을 갓 넘긴 젊음에게 가해진 예외 없는 가혹함이 섬찟했다.


퇴근 무렵까지 깨어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최초 상황을 알기 위해 CCTV를 되돌려 보니, 안내 데스크에서 입주사 보안요원 두 명과 서서 대화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입주사 보안요원이 곧바로 흉부 압박에 들어가고, 나머지 한 명은 황급히 119에 신고하는 장면이 보인다. 응급처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혼자 있을 때가 아니고, 같이 대화 도중 쓰러진 것이 천만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 쓰러진 사람의 인척들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당시 상황을 CCTV로 확인하면서 계속 시비를 따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입주사 직원들이 무관심하게 지나다니는 것, 가슴 압박을 하던 사람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장면도 문제 삼았다. 애초 그러기로 마음먹고 온 것처럼 행동했다. 상식적으로는 곧바로 응급조치 해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게 순서인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아직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임에도, 마치 유가족처럼 행동했다.


다음 날 출근하니, 저녁시간에 깨어났다 했다. 의사와 대화하고 현업 복귀를 타진하는 통화도 했다는 걸 보니 정상 회복 수순을 밟는 듯 보였다. 심정지 상태로 경과된 시간 때문에 불안했는데, 다행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중에 듣기로, 그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가족들과 절연한 상태였다. 찾아왔던 인척들이 그가 무슨 일을 어떤 형태로 하는지, 잘 모르고 있던 것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윗사람이 혼잣말로 "죽었으면, 혼자 억울할 뻔했어." 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에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현장을 목도하고 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이번 일도 그렇다. 건강에 대해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불안한 구석이 있어 우려의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되돌아올 대상자가 될 수 있다. 또 내가 누군가를 그 경계선에서 데리고 나올 수도 있다. 이것이 심폐소생술을 정성을 다해 익혀야 되는 이유이다. 실낱같을지라도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말이다.


이번 일로 가족들과 완전히 등 돌린 채 살아가는 사람의 실체도 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전개되는 상황의 참모습까지 보았다. 가까이에 홀로 삶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씁쓸했다. 그런 줄 모르고, 그와 엘리베이터 운용 문제로 심하게 다투기까지 했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듯 보였는데, 아마도 가족들의 정을 받지 못한 마음의 빈 공간이 컸던 것 같다. 어쩌면 잘 살아간다는 건, 돌아보고 헤아릴 줄 아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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