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왜 하세요?" 점심 식사를 하다 식당 여사장님께 대뜸 물었다. 이름을 적어놓고 월 단위로 정산해 주는 식당이라 스스럼없이 대한다. 육천 원짜리 백반을 오천 원으로 먹을 수 있는 배려도 받고 있다. 질문한 이유는, 칠십 대 중반이 지난 부부가 하기에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분은 웃음 머금은 얼굴로 "집에 있음 뭐해요?" 한다. 그리고는 "장사를 안 한다고 굶어 죽지는 않지만, 두 노인네가 집에 만 있으면 빨리 늙을 것 같아요.", "이 나이에 매일 아침 출근할 데가 있다는 게 고맙지요."라고 부연했다.
'이 나이'와 '출근할 데'라는 말이 귀에 꽂힌다. 힘들어할 것 같아서 한 질문인데, 답은 전혀 예상 밖이다. 출근할 수 있는 이곳만 있으면, 나이는 염두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자식들 잘 키워 혼사 다 치렀으니, 부모로서 남은 의무감도 없다. 이제 효도받으면서 편히 쉬기를 원할 듯한데, 오히려 이 일을 놓지 않으려는 태세다. 어쩌면 그들의 삶에서 가장 평온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장사도 제법 잘 되었다고 한다. 그때 벌어놓은 경제적인 여유도 충분하다고 했다.
전기과장이라는 직책으로 근무를 시작하고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점심 식사를 이 식당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식사비도 싸지만, 어머니 손 맛이 우러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다. 같은 공간에 세 곳의 식당이 있지만, 다 다녀보고 이곳으로 결정했었다. 여사장님은 정성 들여 만든 반찬을 내어놓고, 맛나게 먹어 그릇이 비어 가면 흐뭇한 미소를 띠며 더 내어준다. 새로 만든 반찬에 흥미를 느끼고 맛있게 먹어주는 자체를 큰 보람으로 여기는 듯하다.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받아 매상을 올리려는 모습은 애초에 볼 수 없다. 만들어 놓은 음식의 양을 고려해, 뜨내기손님은 과감히 사양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근무기간이 일 년 하고도 한 달을 뒤로했다. 곰곰이 달라진 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떤 민원이 들어와도 기사들과 같이 스스럼없이 해결할 수 있는 것, 개선할 부분에 대한 과감한 제안을 망설이지 않는 것, 윗사람과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하면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것. 공교롭게 모두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 분명 이것 만으로도 출근에 대한 즐거움은 있다. 하지만 새로운 반찬을 잘 먹어주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던 여사장님의 포스를 따라가기는 멀었다. 업무를 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을 추구해서 희열을 얻으려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나이에 출근할 데가 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인들과 다섯 번의 감정적 충돌이 있었다. 나름 화를 조절해 내는 능력을 자부해 왔었는데, 이 정도면 수시로 감정을 주체 못 한 꼴이다. 작년 여름 두 번째 일이 있고 난 후, 마음을 다잡은 적이 있었다. 잠시 소강상태를 유지했지만, 그 후로 세 번이나 감정 억제를 못했다. 최근 동료 팀장과의 충돌은 최악이었다. 상대방이 타인과의 격한 감정을 나에게 드러낸 것이 발단이 되었다. 물론 그 사람이 원인을 제공한 것은 확실하나, 나의 반응은 충분히 조절 가능한 것이었다. 대충 추스러진 감정의 뒤끝은 찝찝했다. 나는 어느 절에 감정조절 미숙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린다는 것, 어쩌면 이 일을 버텨내는 게 힘겹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이 나이에 출근할 데가 있다.'라는 말, 열심히 산다는 면에서 장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감정의 노예가 되어 좌충우돌하는 형국은, 그 말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여사장님의 태도는 돋보인다. 단순히 무료한 일상을 때워줄 '출근할 데'가 아닌, 만든 음식을 먹어 줄 사람의 감정과 표정까지 살피려는 진심을 쏟는 곳이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이 나이에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감정을 소모시키고 타인들과 불편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지낸다면, 굳이 이 일을 해야 할 필요를 찾을 수 없다.
가벼운 바람에도 들썩거리는 것이 아닌, 편안하게 자리 잡아 묵직하게 드러나는 감정이 필요하다.
경력을 쌓는다는 것, 전문 기술 분야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인을 포용하고 편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까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