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를 내다
볼 살이 시려 머플러를 당겨 올리던 날, 출근길 발걸음은 무거웠다. 머리는 차가웠으나, 머릿속은 뜨거웠다. 많은 생각들이 뒤섞여 돌며 열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사직서를 냈다. 한 달여 고민의 결론이다. 이유는 복합적이었지만, 우선순위는 매길 수 있다.
그 첫머리에 아버지가 있다. 구순에 홀로 생활하며 그림 그리는 것이 하루의 전부다. 언뜻 취미를 위안 삼은 고상한 삶이 연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정리되지 않는 생활공간이 불안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 아파트 관리소장의 전화를 받았다. 다른 주민들로부터의 민원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가끔 방문해서 본 집안의 실상은 심각했다. 부지런히 청소하고 정리한 후 떠나오지만, 남아있는 잔상이 계속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최근 다녀온 뒤, 심각한 고민이 시작됐었다.
특유의 완고함은 철옹성이 되어 빈틈이 없다. 예의를 갖춘 권고나 설득은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영역 안의 모든 것에 대한 도움의 선의를 간섭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젠 타인의 우려 섞인 시선에 노출될 정도로 위험의 경계선에 도달했다. 수차례 망설이다 연락하기로 결심했다던 관리소장의 전화는 사직의 결심을 재촉하는 계기로 작용되었다.
오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를 잊을 수 없다. 십 년 이상을 병상에 있었고, 동생들이 돌아가며 돌보고 간병까지 했었다. 그때 당시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동생들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제 동생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버리기도 했지만, 심정적으로 더 이상 아버지를 동생들에게 미룰 수는 없었다. 내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다음 고민 요인은, 시간이 갈수록 버거워지는 일의 무게였다. 성의를 다하려는 선의가 일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아이러니를 가져왔다.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점점 늘어갈 여지만 남아있다. 이제 되돌리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근무하는 시간 외에도 머릿속이 업무 프로세스로 복잡해지는 일이 잦다.
일하면서 즐기겠다는 최초 의도와 어긋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매사 쫓기듯 살게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악기를 배우는 것도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 마저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번아웃에 빠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밀려온다.
아버지 문제와 연계되면서 고민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참 일해야 할 시기, 고통을 참으며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하는 문제와는 다르다. 더 많은 성과급, 연봉, 승진, 이런 것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적절한 역할이 주어지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위치면 된다. 그리고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데에 여분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익숙해진 위치에서 내려와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니까. 사직을 하게 된 사유를 무엇으로 해야 하는 지도 고민거리였다. 결국 아버지 문제를 내세우기로 결정하고 사직서를 내버렸다. 사직서를 내밀었을 때,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과감히 결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달의 일처리 기간을 주며 다시 복귀를 권고했다.
한 번 기울어진 마음이 바뀌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사직의사를 전달하고 업무인계 준비를 하고 있다. 후임을 선발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유를 들어 양해를 구하는 통에, 사직하기로 했던 날짜를 지킬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시기가 인생 2막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듯하다.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을 더 가볍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잘 달려가던 페이스를 잃고 멈춰 서서 허탈해 할 수도 있다.
인생 2막의 변곡점,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그만큼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한 것은 전, 후의 상황에 긍정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조만간 백수의 시기로 진입하겠지만, 촘촘한 계획을 하나씩 이루면서 희열을 느끼는 시기로 만들어 가려한다. 매일 출근길에 만나던 네 명의 사람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