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은 뾰족하게 날아간다
친구 초청을 받아, 하루 연차 내고 남쪽으로 달려갔다. 내려가는 기차에 오르니 푸근함이 몰려왔다. 초청한 친구가 마련한 저녁식사 장소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그 자리엔 삼 년도 더 지나 보게 되는 친구도 와 있었다. 바다 야경을 보니,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노래의 주인공이 연인에서 친구로 바뀐 것만 달랐다.
술이 고팠던 듯, 급하게 서너 순배 돌았다. 바다 야경과 반가움, 그리고 푸근함이 안주였다. 삼 년 만에 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넌 얼굴이 더 좋아졌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이게 나중에 나를 괴롭히는 말이 될 줄 몰랐다. 그냥,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 하고 지나갔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나보고 얼굴 좋아졌다고 말한 것은 네가 처음이다."였다.
애써 씁쓸한 웃음으로 퉁치던 친구의 표정이 뇌리에 계속 남았다. 솔직히 난 얼굴에 자신 없다. 정갈하게 살아오지 않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얼굴 좋아졌다는 말은 가식 같아서 부담스럽다. 그러니 나름대로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대로 표현된 진솔한 말, 절대 바른말 아니었다. 거기엔 내 생각만 있었지, 상대에 대한 배려의 마음은 빠져 있었다.
그 자리에서 헤어진 이후, 줄곧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삼 년 전 헤어질 때보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덕담한 건데, 곧바로 무례함을 뒤집어쓴 꼴이다. 말이 어려운 줄 진즉에 알았으나, 또 한 번 낭패를 보게 될 줄이야. '글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한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이러고도 글 쓴답시고 자판을 두드릴 자격이 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글을 잘 쓰려면 아직 멀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면 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생각을 표현한다는 면에서, 말과 글의 기능은 같다. 나는 말보다 글을 좋아한다.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몇 번이고 고쳐 쓰면 된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면서 주어지는 여유에 익숙해져, 말할 때 긴장감이 둔해진 듯하다. 가볍게 말을 내뱉고 후회한 기억이 부지기수다. 정제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말은 입을 통해서 나오지만 결국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마음과 감정이 흐르는 통로가 된다. 그 말속에 나의 생각과 삶의 방식,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이란, 넓고 깊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은 뾰족하게 날아간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말에도 온도가 있어, 따뜻해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여기서 따뜻해야 한다는 의미는, 단지 미사여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말을 하는 상대에게 집중하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라 본다.
결국,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배려한 말이 핵심이다. 나이가 들어도 성숙되지 않는 것을 보면, 지긋한 노력이 가미된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