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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버티기
Feb 28. 2023
우리가 친척이야, 뭐야?
작년 ‘사촌훼미리’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여기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늦게까지 있다가 왔을 경우 다음 날 출근이 걱정되어서 안 가기로 했었다.
모임 멤버 중 한 명이 끝까지 참석하기를 종용했었으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모임이 끝나고 흔한 ‘같이 시간을 가지지 못해서 서운했다.’는 둥 뒤풀이 인사말도 없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의붓어머니 슬하에서 서러움을
받고 자랐다.
나에게는 의붓할머니인 그분은 할아버지와 재혼을 하기 전 이미 딸과 아들이 있었고, 재혼 후에 딸과 아들을 낳았다.
의붓할머니가 의사결정권을 장악하다 보니 데리고 온 자식들과 재혼 후 낳은 자식들 위주로 살림살이가 돌아갔다.
그런 이유로 나의 아버지는 본처가 낳은
아들임에도 집안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의붓할머니의 횡포에 의하여 늘 변방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배다른 형제들과는 원수관계로 발전되어 갔다.
그런데 의붓할머니의 자식들이라도 아버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반목하며 지내는 분위기여서, 명절 때 모이면 그야말로 개싸움판이었다.
지금도 나의 아버지는 그때 일들을 물어볼라치면 진저리 치면서 화가 난 말투로 대답하곤 한다.
‘사촌훼미리’는 그때 그 어른들의 자식들이
만들어낸 모임이다.
공교롭게도 의붓할머니가 재혼할 때 데리고 온 딸의 아들, 아들의 아들이 나와 동갑이었고, 명절이 되어서 가족들이 모일 때면 어른들의 관계와 상관없이 우정을 다지고 있었다.
훗날 이 세 명의 의견일치로 의붓할머니가 재혼하고 낳았던 딸의 자식들과 아들의 자식들이 모두 포함된 지금의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다섯 명의 어른들 중 나의 아버지를 포함한 두 분은 교사가 되어서 비교적 순탄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분은 빈한한 농사에 많은 자식들로 인한 궁핍, 두 분은 가정파탄의 전철을 밟게 되어 그들의 자식들은 불우하게 자랐다.
어릴 때부터 그들이 어렵게 생활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임이 잘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생각이 있었는데, 의외로 생각의 일치를 빨리 보았고 8년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2년을 쉬고 오랜만의 모임인데 내가 빠졌으니 무척 서운하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교사였던 두 분의 자식들을 제외하고, 불우하게 자란 자식들 누구 하나도 지금은 빈한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나를 제외한 동갑 두 명도 어렵게 자랐음에도 어느 정도 생활 기반을 닦아서 모임을 주도할 여유를 가지고 있다.
나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고난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잔한 마음에 마음의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한편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특히 그중에 어머니가 막국수집을 운영하던 중 집을 나가버려 어린 딸들이 가장 노릇하며 백수였던 아버지를 봉양하고 남동생을 보살핀 두 딸들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그들이 극도로 어렵게 사는 모습을 봤었기 때문에, 지금 다 가정을 꾸려 행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대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녀
들의 백수 아버지
장례식
때 조문 차 서로 만났던 것이,
모
임을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대목에서 이준관의 시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지나고 나면 마치 시간이 다 해결해 준 것 같지만,
바로 그들이 변화를 관리하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나는 슬픔과 고통이 지나간 자리를 훌륭하게 버텨온 그들이 좋다.
‘인생은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 알게 되는
것이다.’는 말이 있듯이, 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되기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월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모두가 같은 삶에 궤적을 그리며 살아오진 않았다.
그중에는 많이 어긋나고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의 현재는 흘려보내지 못한 과거의
경험과 상처와 기억이 낱낱이 모여 뭉쳐진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보듬으면서 응원해주고 싶다.
올해 모임에는 꼭 참석해서 두 배로
정을
나누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친척이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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