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2년 반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의 일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2008년 뇌경색이 찾아온 후, 당뇨 중증에 의한 신장기능 악화, 그리고 다시 찾아온 뇌경색으로 인생막바지 12년을 정말 불행하게 사셨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 간병을 시작했었다.
그전에는 동생들이 돌아가며 간병을 했었는데, 남동생의 경우는 낮에 직장에 가고 밤에 간병을 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나는 군에서 지휘관으로 근무하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많이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간병 전선에서 열외 되어 있었다.
3년 임기 마치고 퇴직을 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열외의 명분이 없어져 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날, 나는 여느 날과 같이 간병을 하고 있었다.
밤 열두 시쯤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병실 간이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눈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계속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병실 출입구 쪽에서 간호사가 나를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라 출입구 쪽을 바라보니, 출입구에서 침대 쪽으로 나 있는 통로가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나는 손을 뻗어 간호사의 손을 잡아주려 했으나 통로가 더 무너져 내려 손을 잡지 못했고, 결국 간호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세 시 반이었다.
어머니의 안색을 살피면서 호흡 상태와 산소 수치 등을 확인해 보니 특별히 우려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날 아침,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간에 회진을 왔던 담당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어머니가 투석을 못한 이후 많은 시간이 경과해서, 요독(尿毒)이 쌓이고 폐에 물이 많이 차 있어서 고통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영면하셨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새벽에 꾸었던 꿈은 너무도 생생하다.
어머니의 불행한 인생에서 나는 항상 멀리서 바라본 방관자였다.
그동안 나는 항상 변명과 핑계로 어머니를 보살피는 상황을 모면하기에만 급급했었다.
겨우 한 달 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어머니 삶의 막바지를 보살펴 드린 것이 전부다.
이년 반이 지났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액티브 시니어가 되기 위한 우선 조건으로 부모님의 아름다운 퇴장에 정성 가득한 도움을 드려야 하는 것을 들고 싶다.
왜냐하면 그래야 홀가분하고 떳떳한 마음이 되어, 나에게 충실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근무지에서 일 년 경력을 채우면, 나머지 일 년은 원주에 새 근무지를 찾아가서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경력을 쌓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내의 동의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놓여 있어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만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면 그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순간순간 내 주위를 돌아보는 것을 비겁하게 미루다 보면 인생마저 미루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 순간이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때는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