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치유의 산을 오르다

by 버티기

관악산의 정상인 연주대에는 바위가 우뚝 솟아 절벽을 이룬 봉우리가 있다.

나는 늘 ‘관악산에 연주대가 없었다면 얼마나 허전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후, 고려의 충신들이 이곳에 모여 두문불출하면서 주군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의 연주대는 가히 관악산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연주대에 오르니 멀리 과천 서울대공원과 경마장이 보인다.

봄기운을 받은 모처럼의 주말, 관악산 정상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정상석 앞에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올해 들어 세 번째 관악산을 찾았다.

작년까지는 등산 간다면 으레 강북 쪽 산을 많이 찾았는데, 교통편이 항상 번거로웠고 이제 신림선이 생기면서 관악산 접근성이 훨씬 좋아져서였다.

두 번째까지는 아내와 함께였고, 세 번째는 아들 녀석들도 동참했다.

첫 번째는 삼막사까지, 두 번째는 서울대입구역에서 석수역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을 걸었다.

아들 녀석들과 함께한 세 번째는 정상인 연주대를 올랐다.

내가 기억하기에 아내는 가족 모두 등산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고, 그럴 때면 항상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세 번째 관악산 정상 등산도 아내의 간절함으로 시작되었다.

아내는 늘 나를 채근해서 역사가 깊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삭막한 분위기’를 어떻게 든 바꿔보려고 했다.

더구나 아들들도 각자 별거 중이라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실 가족 모두가 등산을 갔던 게, 아마 십여 년 전 북한산 오봉이었던 것이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등산하기 2주 전쯤 아내가 아들들과 등산을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였다.

나도 요즘 사유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들들과 관계를 좋게 만들어 보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선뜻 아들들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아내의 간절함이 아들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곧바로 큰아들이 가능하다는 회신이 왔고 뜸 들이던 작은아들에게도 긍정적 답이 왔다.

큰아들이야 휴일이니까 여자친구 만나는 계획만 조정하면 될 일이었지만, 작은아들은 알바를 바꾸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말로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등산하는 날을 무척 고대했다.

왜냐하면 아들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입은 닫고, 귀를 열기로’ 결심하고 첫 만남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습관적으로 지적하며 가르치려고만 했던 아버지에서 벗어나, 넓은 마음으로 푸근하게 들어주는 모습으로 변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들이 그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개의치 않고, 내가 사유하고 결심한 방향으로 우선 행동해 보기로 했다.


당일 아침 내가 근무교대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작은아들은 집에 와있고, 아내는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싸느라 분주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안방에서 잠시 잠을 청한 사이 큰아들도 도착했고 아들들도 신난 듯 밖이 시끌벅적했다.

묵직한 배낭 두 개를 아들들이 짊어지니 아내와 나는 모처럼 여유롭게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관악산 입구의 평상에서 김밥과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시작한 산행은 정상에서 아들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기대를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선택한 연주대 등반코스는 단거리인 대신 급경사 구간이 많아서 힘들 것은 예측했지만, 큰아들이 무척 힘들어했다.

나는 근무 시 네 번의 순찰 중에 매번 18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리니 별문제가 없었고, 작은아들도 일주일에 네 번을 헬스를 해서인지 잘 올라갔다.

큰아들은 주중에는 업무에 시달리고 주말에는 여자친구 만나야 하니 운동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와 신림역 근처에서 막걸리에 파전은 그야말로 오늘 산행의 화룡점정이었고, 짠돌이 아내가 화끈하게 모두 계산하였다.


하루 지난 뒤 근무를 하면서 반추해 보니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떠오른다.

산행하면서 또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면서도 아들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아직 아버지에 대한 경계심이 남아 있으니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문제는 산행하면서 큰아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어쭙잖은 과시욕으로 앞서 올라간 것이다.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 자리에서 큰아들은 “아버지의 걸음이 너무 빨라 정말 따라가기가 힘들었다.”라고 했었다.

큰아들의 체력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이해심을 바탕으로 뒤에 위치하면서 호흡을 맞추었으면 어땠을까?

한술 밥에 배부르랴.

다음 기회에는 아들들의 입장에서 심사숙고하면서 좀 더 다가가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도 아내의 “아들들에게 맞추어주어서 고맙다.”라는 말에 힘이 솟는다.


주역에서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라고 하지 않았던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가기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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