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지난 남자 네 명이 제주도에 다녀왔다.
나 같은 경우는 금쪽같은 연차 두 개를 소진하면서 합류했다.
작년 연말 모임에서 일행 중 회사 대표로 있는 친구가 숙소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실현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며 거의 건성으로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한 번 한말에 대한 책임감이 유독 강했던 그 친구는 년 초에 숙소가 예약되었음을 모두에게 알렸다.
나는 24시간 근무, 24시간 휴식의 근무를 하고 있던 터라 연차 가능여부를 확인해야 했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연차 두 개를 쓴다면 하루를 완전히 빠지겠다는 것인데, 이곳의 생리상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더 미룰 수 없어 윗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승낙을 받았다.
아무리 술자리 약속도 약속인 것이고, 또 숙소까지 해결되면서 시작된 여정에서 혼자 빠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계획은 회사 대표의 골프 부킹 해결로 급물살을 탔고, 총무로 추천된 친구의 조기 항공권 예약으로 이젠 안 가면 안 되는 족쇄가 단단히 채워졌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큰 난관이 남아 있었다.
부부동반으로 아내들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계획이었으면 무슨 걱정이 있었겠는가?
제주도까지 남자들만 이박삼일로 여행을 가겠다는, 어쩌면 치기 어린 계획을 아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민으로 그치기에는 계획이 너무 진척되어 있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불쑥, “나 제주도 여행 가게 되었어. 남자들끼리 이박삼일로.” 던져 보았다.
웬걸, 아내의 첫 반응은 “누구와 가는데요?”라는 협조적인 물음이었다.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여행을 가게 된 동기와 그간의 진척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그다음 반응이 나를 더욱 감동시켰는데, “그럼 캐리어가 필요하겠네요.”였다.
이렇게 통 큰 아내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제주도 여행 준비가 진행될 수 있었다.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어렵게 공부해서 다시 취직하고 군말 없이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던 것 같다.
여행을 같이 가게 된 네 명의 친구들은 이미 십여 년을 만나오던 관계로, 놀이에 대한 취향이 유사해서 편하게 어울리던 사이였다.
한 번 모이면,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기가 버거울 정도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모일 때마다 자신들의 위치가 견고하지 않다는 것에 불안감을 토로하기도 하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바로 이것이 환갑이 지난 남자 네 명이 제주도까지 여행을 꿈꾸게 된 동기였고, 굳이 명명을 하자면 ‘일탈’이었다.
일탈(逸脫)에서 일자는 ‘편안하다, 없어지다’의 의미이고, 탈자는 ‘벗다, 벗어나다’의 의미이다.
말 그대로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난다.’라는 의미로 일상탈출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탈은, 평상시 모임에서 대중교통 시간에 쫓겨 헤어짐을 반복했던 아쉬움에서 벗어나, 장시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무르면서 서로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힐링의 기회를 갖자는 것이었다.(너무 미화시켰나?)
이박삼일의 여행은 강행군이었다.
특히 24시간 근무 후에 곧바로 공항으로 달려간 나는 이미 잠이 부족한 상태인 데다가, 이틀간 대중없이 들이부은 술과 시간제한 없는 힐링 타임으로 인해 악전고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상시 근무일에 부족한 잠은 항상 보충해 주면서 일정한 생체리듬을 유지하고 있었고, 가능한 무리를 하지 않으려 약속도 연달아 잡지 않으면서 컨디션을 조절해 왔다.
그것은 액티브 시니어를 위해서 시작한 일로 인해서 건강을 해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교대근무로 인해 생체리듬이 깨지면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라는 연구결과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사흘간의 ‘일탈’을 위한 강행군은 나의 생체리듬을 사정없이 망가트리기에 충분히 강력했다.
여행 마치고 일상에 복귀한 뒤, 소화도 잘 되지 않고 하루 종일 멍하니 졸리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전형적인 생체리듬 파괴 증상이 지속되었다.
거의 일주일을 헤매고 나서야 ‘일탈’을 가기 전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계획한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툭 터놓은 말들이 오가면서 힐링 근처까지는 갔던 것이 의미로 남을 것 같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탈’은 일종의 ‘자극’이다.
‘일탈’은 보다 나은 일상을 위한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야 한다.
중심은 일상에 있고, ‘일탈’은 일상을 윤기 나게 만드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쳐야 한다.
그래서 ‘일탈’은 짧고 굵어야 하며, 일상을 망가트리는 후유증을 최소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나에게 있어 이번 ‘일탈’은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더 늦기 전에, 이제껏 상황에 이끌려 살아온 친구들이 이제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맘껏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는 면에서는 유익했다고 자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