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방 쓰기의 패러독스

by 버티기

작년 오월, 작은아들이 김포에 방을 얻어 독립해 나가면서 아내와 나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요구했던 것도 아닌 데, 아내는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작은아들이 쓰던 방으로 옮겨갔다.

아들 두 녀석이 가끔 집에 와 잘 때, 본의 아니게 합방하는 일을 제외하면 거의 독립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나는 잘 때 아주 공손하게 자는 편이다.

그래서 잠들 때 모습이 깰 때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문제는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코를 곤다는 것이다.

아내 말에 의하면, 술을 많이 먹고 들어와 잘 때는 탱크 수십 대가 지나간다고 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거실 소파에 나가 자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여기까지 보면 각방을 쓰는 이유는 내가 술 먹었을 때의 코골이다.


하지만 작은아들이 독립해 나갔던 시기를 보면, 내가 한창 전기기사 공부를 하느라 술을 먹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저 영등포평생교육관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열 시 넘어 집에 와서 잠 자기 바빴었다.

그러니까 내가 술 먹었을 때 코 곤다는 표면적인 이유는 당위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내의 코골이도 만만치 않다.

아내가 먼저 잠든 날이면 그 소리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밤이 셀 수 없다.

나처럼 술을 먹었다면 이해의 여지가 조금은 있는데, 그렇지도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것을 각방을 써야 된다는 이유로 들고 싶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들 수 있는 것은 서로 신경 쓰이는 요소를 줄이자는 것이다.

어쨌든 아내와 나는 구 개월여 각 방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내가 아내와 각방을 쓰게 된 경위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아이러니한 현상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면 관계가 더 소원해지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의 경우 오히려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애틋해졌다.

아내가 생각을 직접 표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알 길은 없지만, 나에게 하는 행동이 더 살가워진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생활문화의 차이로 인해 발생했던 잦은 사소한 다툼도 거의 사라졌다.

이런 일련의 비상식적인 감정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스개 소리로 "30대는 꼭 붙어서 마주 보고 자고, 40대는 바로 누워서 천장 보고 자고, 50대는 각자 등 돌리고 자고, 60대는 각 방을 쓰고, 70대는 어디서 자는지도 모른다. “는 말이 있다.

적어도 이 기준에서 보면 우리 부부는 시기상 정상적인 시퀀스를 밟고 있는 것이다.


애리조나대 마이클 그랜드너 교수는 “함께 자는 커플이 각 방을 쓰는 커플보다 수면 만족도가 높았다.”라고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 이유는 안정감과 편안함 때문에 비록 수면의 방해를 받더라도 전체적인 효용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또한 “커플은 깨어 있을 때만 아니라 수면 생활도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나는 연구결과를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모든 부부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님은 충분히 안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적어도 잠이 부족해진 상태에서 짜증으로 일관하거나, 술을 먹게 된 동기 자체를 비난하게 되어 더 큰 감정의 골을 만드는 일은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잠을 자는 시간 외에도 각자의 공간에서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도 그 맛이 쏠쏠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있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는 환갑이 지난 부부가 각 방을 쓰면서 따로 잔다고 해서 애정은 절대 식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 부부가 각 방은 쓰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더 돈독해진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공간에서 온전히 혼자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의 문화적 충격에 쉽게 적응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인 것은 분명하지만, 슬픔에 빠져 오래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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