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아직 3분의 2 이상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도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아내는 아예 집을 벗어나기 전 마스크부터 챙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얼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으로 마스크 착용을 꺼렸었다.
다만 황사나 미세먼지 방지, 호흡기 질환 또는 건강 취약자들의 감염 예방 목적으로 일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부터는 감염을 우려해서, 마치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옷을 벗고 집을 나서는 것과 같은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급기야는 국가적 통제하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행동 제약을 받게 되는 상황까지 갔다.
이후에는 마스크 착용 문제를 가지고 수많은 갈등이 양산될 정도로,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왜 마스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분명히 올해 3월 20일부로 ‘대중교통과 대중시설 내 위치한 개방형 약국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을까?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만 해제되어도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간절함으로 이날을 기다려 왔는데,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싶어 안달인지 정말 아이러니다.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순수하게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인건비 지출을 줄이려 근무하는 인원을 최소로 하고 있어, 한 명이 장시간 비우게 되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피곤해지게 마련인 것이다.
반면, 아내는 호흡기가 약한 집안 내력 때문에 환절기마다 감기로 고생하고 있어 평상시에도 마스크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그래서 마스크 해제와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이유 말고도 마스크 착용을 고집하는 이유를 하나 목격했었다.
어느 날 윗사람이 일하는 분들을 격려할 목적으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모였는데, 미화여사 한 분이 먹기 전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만나면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실제 얼굴 전체를 본 적이 없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혼자서 계속 쓰고 있길래, 내가 “마스크 안 벗으세요?”하고 물었다.
미화여사가 쑥스러운 듯 “얼굴이 못 생겨서요.” 하면서 아주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직접 본 얼굴은 솔직히 눈 만 보았을 때보다는 못했지만, 그렇게까지 벗는 것을 꺼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본인은 마스크를 벗은 민얼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계속 쓰고 다녀야 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향수가 있음을 느꼈다.
코로나 감염 방지와 호흡기 계통 보호 등 마스크의 본래 기능에 충실한 착용 외에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서라는 것은 분명 새로운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러한 목적으로 착용한 적이 많았다.
쉬는 날, 매일 면도하기 싫어서 안 하고 있다가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마스크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가끔 아내도 호흡기 보호 말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가리는 목적으로 마스크를 쓴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를 황사, 감기 등 특별한 용도일 경우에만 사용해서 미처 마스크의 또 다른 효용성을 체험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깨달았다고나 할까.
여성들이 공들여 한 화장이 마스크에 묻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효용성에 의지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별히 눈이 이쁜데 얼굴을 다 드러내어 상대적으로 눈이 죽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또는 눈보다는 하관 쪽이 많이 부족한 얼굴이라 눈만 드러내고 싶어서와 같이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런 행위들이 마스크의 효용성에 의지해서 자신의 다른 이미지, 즉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다른 이미지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마스크 뒤에 숨어 자신을 감추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들어진 페르소나가 자신의 본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이지 않게 해서 자신감을 상승시키는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속됨에 따라 부정적인 면이 부각될 것으로 예측된다.
예를 들면 장시간 익숙해진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모습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훗날 더 큰 애로사항과 열등감으로 발전될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최소한 안 깎은 수염을 가리기 위해서, 더 솔직히 말하면 게으름을 감추기 위해서 마스크 뒤에 숨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보건당국이 아직 감염 우려가 큰 장소에서는 착용을 권고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야 마스크 착용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페르소나 속에 감춰진 자신의 본모습을 빨리 찾아가는 게 오히려 진정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첩경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