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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May 23. 2023

혐오의 대상으로 늙어가긴 싫다

재작년 여름, 나는 영등포역 뒤편의 한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들어와 내 자리에 앉으려는데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게 보였다.

잘 보이지도 않게 작고 흐릿한 글씨로, 개략 ‘너무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해달라’라는 내용이었다.

포스트잇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로 소음을 낸 적이 없었다.

나름 이런 곳에서 공부에 방해되는 행동을 할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고, 그때는 전기기사 필기시험을 일차에 합격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집중하느라 소음 낼 계제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메모까지 남겨놨으니 더 소음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순수하게 생각했다.

까치발로 오가며 조심조심 공부하던 어느 날, 같은 사람 글씨체로 유사한 내용의 포스트잇이 또 붙어있었다.

정말 화가 나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곧바로 입구에 관리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보여주면서 ‘누군지?, 어떤 소음이 그렇게 방해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관리하는 사람이 사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난감한 표정으로 누군지 알 수 없고 무척 예민한 사람일 것 같다는 말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나이가 있어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지만, 공부에 방해될 정도로 소음 내는 것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기 순환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조기에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음 날 결국 그 독서실을 떠났었다.


얼마 전 ‘카페에서 60대 여자에게 20대 여자 둘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 자리 양보를 요구한 뉴스’를 보면서, 그때 독서실에서 두 번의 포스트잇 메모가 같은 의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사람들만 있는 독서실에 늙다리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어떻게든 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어느 쉬는 날, 잠에서 막 깨어난 나에게 아내가 굳은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스쿨존에서의 속도위반으로 12만 원 과태료를 내라는 용지였다.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벌써 12만 원짜리만 네 번 째니 아내의 인내심이 바닥이 난 것도 이해가 된다.

승용차를 거의 쓰지 않다가 치과 가거나 이발하러 갈 때 어쩌다 한 번씩 쓰는데, 길목에 있는 스쿨존을 통과할 때마다 어김없이 걸린 것 같다.

이미 다 아는 길이라고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지 않은 채 무심코 가다 뒤늦게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절대 용서하는 법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젠 차를 몰고 나가는 게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스쿨존에 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전혀 생소한 ‘실버존’이라는 용어를 발견했다.

나이 든 보행자의 통행이 잦은 곳에 사고 방지를 위해 차량의 속도를 제한하고 일정한 시설을 설치한 ‘노인보호구역’으로 이미 2008년부터 시행 중이었다.

주로 노인들이 많이 통행하는 경로당, 노인 복지시설, 공원 근처 등을 대상으로 지정된다고 하는데,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뿐더러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그 이유는 지정된 곳이 서울의 경우 스쿨존에 비해 10 분의 1도 못 미치고, 단속카메라 설치 의무도 없어 속도 제한을 지키지 않아도 단속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공단의 발표에 의하면 5년간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의 56.6%가 65세 이상 연령층이었다.

데이터상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현상임에도, 스쿨존에서의 에누리 없는 집행력에 비해 실버존은 정말 어처구니없이 시행되고 있었다.     


최근에 ‘노시니어존’이 등장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도 ‘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합니다.’ 문구가 내걸려서 떠들썩했던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차별에 대한 반감으로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가게를 혼자 운영하는 여성 점주가 나이 든 남자 손님들의 희롱을 감당할 수 없어 손해를 감수하고 내걸었다는 말에 일견 이해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요즘 보라매 공원을 가면 나이 든 분들이 장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직접 두시는 분들도 많지만, 훈수 두는 수많은 사람들로 주위가 시끌벅적하다.

종로의 탑골공원 근처에는 여기보다도 더 많은 나이 든 분들이 모인다.

그래서 탑골공원 주변에는 무료 급식소를 비롯해 저렴한 음식점, 술집, 이발소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들이 즐비하다.

물론 탑골 공원 옆 낙원 악기 상가 공터에서는 더 큰 장기판이 펼쳐져, 매일 장기를 두는 이들과 훈수 두는 이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아직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일자리는 없고, 대화할 대상이 줄어들다 보니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같은 처지 사람들이 많은 종로로 모인다는 것이다.

이렇듯 나이 든 사람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 가는 상황에서, 비록 점주의 사정이 이해는 되지만 나이 든 모든 사람을 싸잡아 출입 제한한 것에 대해서는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직접 혐오의 대상이 되어보기도 하고 사회 현상에서 나타나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차별과 혐오 분위기를 보면서, 앞으로 맞아야 할 나이 듦의 시간이 축복은커녕 소외의 불안을 견뎌야 하는 인고의 시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혐로(嫌老)’라는 말은 1995년 일본이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즉, '노인을 혐오한다.'라는 의미로 우리의 '노인을 공경한다.'라는 뜻을 가진 '경로(敬老)'라는 말과 너무 대비된다.

고령화 진도에 있어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20년가량의 차이를 두고 뒤를 쫓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 나타나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혐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일부 나이 든 사람의 행태를 전체 문제로 일반화해서 우리라는 테두리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나는 이런 사회 분위기 변화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혐오의 대상으로 늙어가기는 정말 싫다.

    

혐오의 대상자로 전락하지 않고 늙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 첫걸음이 나이벼슬로 여기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를 앞세워 대접은 받으려 하면서도, 반면에 사회적 질서는 무시하려는 행동은 혐오 대상자로 가는 첩경이라고 여겨진다.

오히려 먼저 배려와 베풀기를 하면서 예의와 사회적 질서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스스로 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인생 바보 중에 ‘살날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자식에게 일찍 재산 다 물려주고 용돈 타 쓰겠다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고맙게 여기겠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짐’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식에게는 경제력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면서 ‘짐’이 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란 말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항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젊은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는 사람’ 등으로 남아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중년의 기간을 최대한 오래 가져가는 것이다.

항상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며, 배우고 일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기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에서 ‘짐’으로 취급받기보다는 ‘힘’이 되는 사람의 역할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었지만 다른 대안도 많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와 끊임없는 사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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