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티기 Nov 11. 2023

내 발로 응급실을 가다

어느 일요일 저녁, 나는 응급실에 있었다. 처방 다시 받고 영양제도 맞아 볼 요량으로 내 발로 찾았다. 이틀 동안 밤새 잠을 설친 데다, 주기적으로 몰려드는 복통은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삼일 째 먹는 족족 설사를 하다 보니 기력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응급실 의사를 만나 처방을 받는 것까지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영양제를 빨리 맞으려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검사를 받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젠장! 양성 확진이란다. 코로나로 의심될 아무 증상도 없었다. 정말 날 벼락같은 일이었다. 코로나 확진자는 격리실에서 영양제를 맞아야 하는데,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뒤로하고 응급실을 나왔다. 이미 많은 시간을 응급실에서 보낸 나에게 그곳에 머물 인내심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같은 상황이라 빨리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선 직장의 윗사람에게 전화하여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는 것과 극심한 장염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윗사람은 출근하지 말고 쉬면서 상태를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나의 소중한 연차를 까먹는 일이었지만, 윗사람이 자신의 피곤함을 감수한 배려라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 덕분에 하루 걸러 숨 가쁘게 달려오던 근무를 두 번이나 빠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쉴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응급실에서 처방한 약을 먹으니 속도 편안해지면서 입맛도 돌아왔다. 기력이 회복되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이제까지 장염은 물론, 어디가 아픈 것 때문에 응급실까지 가본 적은 없었다. 더더욱 뭘 잘못 먹어서 사달이 나본 기억은 전혀 없다. 잘 체하고 배탈도 나는 아내가 정말 부러워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체질을 갖게 해 주신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왔다.


그게 문제였다. 이런 것에 기대어 만용을 부려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날 것, 비린 것, 삭힌 것 등 남들이 거북스러워하는 음식들을 무한정 삼켜왔다. 나의 굳건했던 비위와 면역력만 믿고 말이다. 찬찬히 돌이켜 본 음식 중에 며칠 전 곱창집에서 먹었던 간과 천엽이 생각났다. 한 접시를 금세 비우니 친절한 아주머니가 또 한 접시를 갖다 주셨다. 아내가 먹지 않으니, 혼자서 먹어도 너무 많이 먹었다.


하여튼 이번 일로 면역력이 좋다는 나의 명성에 흠집이 크게 났다. 며칠째 식사도 못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앓고 있던 나에게 아내는 "어쩐지 날것을 너무 많이 먹더라"하면서 놀려댔다. 인생에서 처음, 며칠을 고생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든다.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았다. 연식이 오래되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날것에 대한 식탐도 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고무풍선 바람 빠지듯 쪼그라들어 버렸다. 먹지 못했던 사흘 만에 몸무게의 4KG가 빠지는 것을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제 '왕년에 어쩌고 저쩌고'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이후, '사부작사부작'이라는 말이 친근하게 들린다. '사부작사부작하다.'라는 말의 뜻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행동한다.'이다. 이제 무리수를 경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부대에서 근무할 때 차량 정비소에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는 말을 많이 봤었다. 어쨌든 연식이 오래된 몸을 더 쓰려면, 그저 무리수를 멀리하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술, 어떻게 지낼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