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잠시 쉬어가기로 했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집중한다는 명목이었지요. 그런데 매일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현타가 왔습니다. 지금 뭐가 중요한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면서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누르는데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앞으로 짬짬이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술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다. 사실 전에도 그럴 기회는 많았다. 그렇지만 이번만큼 절박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끈하게 친분을 유지해 온 걸 보면 말이다.
근무하러 가야 하는 일요일 아침, 나는 숙취에 찌든 채로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있었다. 다음 날 처형 식구들과 골프 라운딩 계획이 있어, 티업시간에 맞추려면 근무 마치고 곧바로 가야 한다. 그래서 출근하면서 차를 가져가야 했다. 그런데 내가 아닌 아내가 운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출근해야 하는 시간에 운전대를 잡고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출발부터 도착 때까지 엄청난 잔소리를 한 것 같은데, 그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의 근무형태가 휴식하는 날 무리하면 그만큼 몸에 피로로 누적된다. 그래서 근무한 다음 날은 약간의 잠을 보충하거나, 열한 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등 컨디션 조절을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이 잡혔다. 평상시 같으면 당구, 식사, 스크린 골프의 일정을 소화하고 늦지 않게 헤어지던 만남이었는데, 그날은 모두가 무엇에 씐 듯 술을 한 잔 더하는 일탈을 감행했다. 아마도 다른 친구들은 그날이 토요일이라 다음날 부담이 없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 같았다. 문제는 다음 날 근무를 해야 하는 내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돌아갈 차편은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고 한정 없는 시간을 달렸다. 결국, 듬성듬성 끊어진 기억을 더듬고 더듬으면서 초췌한 모습으로 집을 찾아 들어왔었다.
그 후과는 정말 오랫동안 심각했다. 우선 몸에 피곤이 깊게 남아 회복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아내가 퍼부었던 잔소리 중 한 가지가 기억에서 살아나면서 계속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것은 "술 먹는 것은 환갑이 넘어도 변하는 게 없냐?"였다. 환갑!!! 이 말이 오래도록 머리에 무겁게 남아있었다.
고3 시절, 아버지의 술상에 불려 가 먹기 시작했던 술과의 질긴 인연도 어언 사십오 년이 되어간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앞세운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필연인 것처럼 술과의 관계가 맺어졌다. 아버지는 지금도 같이 한 잔 할 때면, 환갑이 지난 아들에게 오래된 축음기처럼 그때 하던 술 교육을 반복하곤 한다.
그중에 "첫 잔은 삼십 분에 걸쳐 먹어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도 술이 빨리 취하지 않도록 천천히 먹어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지켜본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직장 술 문화가 삼십 분 동안 술 한잔 비우지 않는 사람을 용납해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단지 그 분위기를 해치는 주범이 되지 않기 위해 미련하게 달려오기만 했다. 이제는 술 먹는 버릇으로 굳어진 채, 나 자신과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과의 오랜 인연을 유지해 오면서도 술만을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주나 혼술은 거의 하지 않는다. 분위기를 위해 술이 필요한 것이지, 단지 술을 먹기 위해 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술이 고프다기보다, 감성이 고팠던 것이다.' 문제는 그 감성에 따라 술의 양이 선을 넘어간다는 데 있다. 사고 쳤던 날 친구들과 대화 주제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이 씁쓸한 감성을 자극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술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날 때는 더없이 정겨운데 헤어질 땐 더없이 매몰찬 것 같다. 결국 혼자 남겨져 있게 하니까. 술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독이 되기도 한다.
'한 잔을 마셔도 열 잔처럼, 열 잔을 마셔도 한 잔처럼.'이라는말이 있다. 한 잔만 마셔도 분위기 맞출 줄 알아야 하고, 열 잔을 마셔도 한 잔밖에 안 마신 것처럼 언행을 바르게 하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말은 멋있지만, 이제 뒤쪽의 말이 해결되지 않는다. 몸에서 받아주어 버틸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은 한참 지나가고 말았다. 이걸 진즉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많이 어리석었다.
육십갑자 한 순배를 돌고 난 이즈음, 술은 나에게 어떤 의미와 관계가 되어야 하는지 정리해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술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고민해 보았다.
세월에 무게에 걸맞은 술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우선 술에 대한 관대함을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금주'라는 일도양단의 결론을 내리고 매정하게 돌아서고 싶지는 않다. 분명 술이 나에게서 앗아간 것보다는 베풀어 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는 절제의 미를 살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술이 만들어주는 즐겁고 행복한 것들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감성보다는 이성이 지배하는 관계로 전환하려 한다. 그러니까 술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 선을 지켜나가겠다는 말이다. 분위기에 취하기 위해 마시는 단순한 관계를 벗어나, 분위기를 즐기는 현명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