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티기 Dec 04. 2023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임영웅 가수가 2018년에 발매했던 싱글 4집 앨범이다. 가사로 음미해 본 노래 의미는 연인에게 빨리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제목으로만 보면, 마치 2년 후 자신의 인생 역전을 예견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로 수직 상승한다는 것이니까. 2016년 1집 '미워요' 이후, 매년 앨범을 발매하면서 꾸준하게 활동하였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그러다 2020년 미스터 트롯 진으로 선발되면서 '영웅'이라는 이름값을 하고 있다. 겉으로 나타난 것만으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면서 내공을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영웅 가수는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을 말하고 싶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 오기 전까지는 '계단'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아파트나 지하철에서 올라갈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계단 운동의 마니아가 되었다. 근무하는 건물은 사무실 위치에서 옥상까지 18층이다. 1일 근무 중에 네 번의 순찰을 하게 되는데, 매 번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오른다. 처음에는 옥상에 도착하면 땀을 흠뻑 흘리면서 숨을 몰아쉬곤 했는데, 이제 올라가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고 전혀 숨도 차지 않는다.


이틀 걸러 근무하며 오르는 계단운동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것은 절친들하고의 몇 번에 걸친 관악산 등반에서 효과가 입증되었다. 특히 계단 구간에서는 물 만난 고기 마냥 펄떡거렸다. 이곳에 근무하기 전에는 아파트 헬스장에서 체력을 유지했었는데, 지금의 근무형태에서는 규칙적으로 운동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나마 이틀마다 하는 네 번의 18층 계단 오르기가 베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습관은 무서웠다. 지하철에서 올라갈 때도 시간이 촉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계단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본 계단이란 말에는 피상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전의 첫머리는 단순하게 '사람이 오르내리기 위하여 건물이나 비탈에 만든 층층대'이다. 그러나 차례로 나와있던 것은 '어떤 지위나 뜻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하는 차례나 순서', '일을 하는데 밟아야 할 차례'로 진중한 의미였다. 계단은 그냥 건축구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어쩌면 인생 모두를 담고 있는 엄청난 무게를 가진 말이었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밟고 오른다는 것은 삶의 비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더불어 한층 성숙되어 가면서 성취감과 용기를 얻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지나온 삶 속에서 마주했던 계단은 그 높이와 크기가 항상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계단은 너무 높아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한 계단 중에는 야트막하고 넓은 것도 있어 여유 있게 올라갈 수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이런저런 계단을 결국 밟고 올라섰기 때문에 오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보지 않고 그저 한 계단 앞만 보면서 올라왔다. 그러기에 주변에 좋은 경치도 못 보고 올라왔지만, 나만의 정상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땀을 식히고 있다.


계단은 '삶의 의지'와도 관련이 깊다. 또한 '신분과 사회적 지위의 수직적 상승에 대한 욕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지하철 출구를 쳐다보며 한숨 쉬면서 서있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믿었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어서 걸어 올라가야 하건만, 첫 계단부터 부담스럽다. 계단 오르는 것을 불편해할 때부터 삶의 에너지는 약화되기 시작한다. 삶은 결국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앞에 계단만 쳐다보며 우직하게 한 걸음씩 옮겨야 하는 것이다.


영국 의학 저널에 실린 연구에 의하면, 계단을 오를 때마다 4초씩 더 오래 산다고 한다. 그리고 계단 오르기는 배드민턴의 2배, 탁구의 4배, 걷기의 3배만큼 소비되는 칼로리가 높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가히 '계단의 재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육십갑자를 돌아 나오고 있는 나에게 계단이 주는 의미는 정말 크다. 어느 글에서 읽었던, '노년은 다리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쭈볏쭈볏거리면서 시작한 계단 오르기가 습관으로 체화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결심해서 행동으로 옮기고 습관까지 이끌어낸 것이 자랑스럽다. 이제 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제부터 '계단'이라는 말의 진중한 의미를 살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피상적인 '계단'의 의미를 살리는 것과 병행해서, 삶의 의지 측면의 나 만의 계단을 만들고 한 계단씩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기록으로 남겨진 것 만 기억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