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넋두리 좀 하려고 글을 시작했다. 시설관리 일을 하면서 여전히 정이 들지 않는 게 자동화재탐지설비다. 근무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으로 본다. 이 설비에 정이 붙지 않는 이유는, 에누리 없고 때로는 횡포가 심하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 어디에 있건 신호만 감지되면, 어김없이 경보사이렌을 울리고 제연설비가 작동되면서 대피 안내방송이 송출된다. 그러면 입주민들은 득달같이 전화해서 "진짜 대피해야 하는 것이냐?" 하며 아우성이 시작된다. 이런 상황이야 설비를 만들어 놓은 목적이 있으니까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비화재 경보면 정말 황당하고 허탈해진다. 혼자 근무하는 시간에 이런 상황이 생기면 거의 초인처럼 행동해야 한다. 신호가 감지된 장소가 어디이건 초스피드로 올라가서 신속하게 찾아내야 하고, 그러면서 입주민의 아우성에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런 상황이 근무일마다 두 번 연속으로 생겨 초인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날은 특별한 일이 없어 극히 평범하게 지나갈 분위기였다. 한동안 시설 보수일이 많아 일일이 쫓아다니느라 피곤했었다. 모처럼 여유 있게 앉아 브런치 글을 읽고 있는데, 경리가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으니 그 증거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민원인이 목격했다는 시점이 너무 러프해서 나름 시점을 설정해 CCTV를 돌려보고 있었다. 한창 CCTV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화재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침 평일 주간 시간대라 윗사람이 방재실로 오고, 나는 화재 신호가 감지된 곳으로 올라갔다. 신호가 감지된 곳이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층이라 손님들 포함해서 동요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계속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송출되면서 나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화재 흔적은 물론, 작동된 감지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하니 직접 올라왔다. 조금 있다 윗사람이 찾아서 가보니, "여기 있잖아요." 하면서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를 유발한 감지기 놈은 세탁기실 구석에 보일러실 용도로 만들어진 곳에 있었다. 보일러는 설치할 필요가 없어 호스 보관 장소로 쓰고 있었고, 열감지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날은 올 들어 제일 춥다는 날이었고,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열감지기가 작동되었다. 그야말로 정통 오작동이었다. 전에 경험했던 바로는 주로 연기감지기에 의한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게스트룸으로 쓰고 있는 객실만 주목했었다. 조리 중 연기를 유발해서 생기는 화재경보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찾아내지 못한 죄로 윗사람의 못 미더워하는 말투와 짜증을 순순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신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일 주간 중에 화재 상황이라면, 너나 할 거 없이 같이 대처하는 것이 원칙 아닌가? 꼭 누군 지켜보고 나만 찾는다고 동분서주하는 게 맞는가? 허탈한 마음으로 앉아있으니, 괜히 부아가 치민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직급이 깡패인걸. 다음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야지. 하여간 에누리 없는 자동화재탐지설비 저놈 정 떨어진다.
하루 쉬고 근무하러 들어온 날은 토요일이었다. 보통 휴일 근무하게 되면 혼자서 푸근한 마음으로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쓴다. 오전에 진도를 많이 나가 뿌듯한 마음으로 오후 순찰을 돌았다. 막 순찰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화재경보 사이렌이 울리면서 안내방송이 나오고 난리다. 수신기에 표시된 화재감지 장소는 6층이었다. 또다시 초인이 되어 바람같이 6층으로 올라갔다. 언뜻 동물적인 감각의 느낌은 화재가 아니었다. 이제 호실마다 차례로 오작동 장소를 찾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멀리서 입주민 한 명이 쭈뼛쭈뼛 그리고 계면쩍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곧이어 "제가 음식물 조리하다 태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며 말했다. 그 입주민을 앞세우고 현장으로 갔다. 음식물을 인덕션에 올려놓고 잠들었던 듯, 새카맣게 탄 냄비가 처량한 모습으로 놓여있었다. 즉시 연기감지기를 제거하고, 화재로 발전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를 하면서 방재실로 내려왔다.
방재실에는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소방대원들 여러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입주민 중에 누군가가 소방서에 화재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책임자인듯한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를 물어왔다. "수신기에 표시된 화재 감지 장소에 가서 확인해 보니, 입주민이 음식 조리 중 태우면서 연기가 발생해서 감지기가 작동했다. 감지기를 제거하였고 이제 수신기를 복구하려고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치를 잘하시네. 신경 쓸 것 없겠다. 철수하자"하면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방재실을 나가는 것이다. 입주민을 대상으로 안내방송을 끝으로 상황을 종료했다. 다행히 입주민이 빨리 이실직고하는 바람에 상황이 빨리 정리되었고, 절차상 문제점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생각해 보니 전문가인 소방대원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이틀 전에 오작동 감지기를 못 찾아 죄인이 되었던 것이 떠오르며 야릇한 감정이 밀려왔다.
연속해 근무하면서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었다. 한 번은 오작동으로 울었고, 한 번은 실제 작동으로 웃었다. 나를 이렇게 실없이 만든 주범은 자동화재탐지설비다.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친구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놈 때문에 본의 아니게 노심초사해야 하는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려졌다. 새삼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진다. 사실 생명이 없는 무기체라서 이놈 저놈 하였지만,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설치되어야 할 설비다. 자주 오작동한다고 꺼놓았다가 혼쭐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어차피 떼어버릴 수 없을 바에는 정도 주고 친해져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관계를 맺은 사람 중에도 이런 부류가 있었던 것 같다. 가끔 감정을 뒤틀리게 만들어 정 떨어지지만, 필요에 의해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 말이다. 이제 다 부질없는 사람들이라 관계를 단절했는데, 생명도 없는 무기체에게 정을 주고 친해져야 하다니. 어쩌겠는가?, 오래 현역으로 버텨야 된다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