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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Dec 19. 2023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들

고등학생 시절, 절친의 권유로 교회를 다녔다. 그 친구는 그다지 독실하지 않았지만 고등부 회장까지 하고 있었다. 아마도 특유의 친화력과 축구 실력이 한몫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즈음에는 교회 고등부 대항 축구시합을 돌아가면서 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는 축구선수 자원으로 교회 나오기를 권유했던 것 같다. 어쨌든 교인이 되고부터 성경공부나 수련회 같은 활동에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런데 예배 때마다 암송해야 하는 주기도문은 정말 외워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한동안 주기도문 암송 때 입만 오물거렸다. 용어도 생소하고 의미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기억되어 입으로 옮겨지기는 어려웠다.


주기도문 중에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였다. 특히 '시험'이라는 말의 의미였다. 피상적 개념의 Test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거라 짐작은 되었지만, 그 깊이를 알지 못했다. 훗날 신심이 깊었던 친구를 통해 알았던 '시험'의 의미는 생각보다 심오했다.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는 하나님은 시련과 연단을 목적으로 하지만, 마귀는 유혹하여 끌어내리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 하나님의 시험에서 해방되게 하고,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의미인 것이다.


뜬금없이 주기도문을 언급한 것은, 어쩌면 여기서의 '시험'이 우리의 인생 역정 중에 찾아오는 간난신고와 유사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을 맞닥뜨리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워 갈등에 빠지기도 하고 유혹에 못 이겨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다. 이것들이 인생에 있어서 '시험에 드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시련을 통해 연단시키고, 수시로 유혹과 갈등의 결과로 인해 끌려내려가기도 한다. 인생 2막을 살면서 중대한 결정을 내릴 기회는 많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온 삶의 기준이 외부로부터 오는 유혹과 갈등에 의해 망가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연말 모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11월 말, 경인지역 동기생 모임이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동기생이 참석하는 바람에 추가로 자리를 더 만들어야 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의 즐거움은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하루 걸러 24시간 근무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모임이 많았었다. 다행히 이번 모임은 쉬는 날에 하는 바람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또한 회비로 계산된다는 안일함 덕에 엄청난 고기양을 흡입하는 행복한(?) 날이기도 했다.


즐거운 모임이었지만 옥에 티가 있었다. 그것은 일부러 내 자리까지 찾아왔던 동기생과의 대화 장면이었다. 그 친구는 유독 가치관의 차이가 커서 데면데면 지내는 중이었다. 나의 근황을 물어와, 지금 하는 근무형태를 말해주고 만남에 제한이 따른다고 부연했다. 곧바로 쓴웃음과 함께, "꼭 그런 일까지 할 필요 있냐?"라고 물었다. 물어본 정확한 의도가 의심스러웠지만, 경력을 쌓으려면 할 수 없이 2년은 해야 한다고 했다. 곧이어 자신을 소원하게 대한 것을 섭섭한 감정을 담아 장황하게 말하는 바람에 한동안 불편했다. 그 친구가 다른 자리로 이동해 가고 난 후에도, 비웃듯 했던 "꼭 그런 일까지 할 필요 있냐?"라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날의 즐거운 시간 중에 딱 그 장면만 들어내고 싶다.


마침 나 자신도 이런 일을 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껴가고 있었다. 사실 자식들도 독립했고 연금 받아서 좀 덜 쓰면 생활하는데 문제는 없다. 아마도 그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위 없는 일'을 무리하게 할 필요 있냐는 말이었다고 짐작된다. 그날 이후,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시험에 드는 순간'이 왔다. 액티브 시니어로서 최대한 오래까지 현역으로 남아 있고자 노력한 것이 부질없는 일인가? 사실, 나의 계획 때문에 가족과 변변하게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늘 나로 인해 제한을 받았고, 내 눈치만 보는 상황이 비일비재했었다. 등등.....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 정리하는데 꼬박 일주일을 필요로 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자'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시험에 드는 순간'을 잘 정리했다.


올 들어 가장 춥다던 날, 또 한 번 '시험에 드는 순간'이 왔다. 이번은 '이런 꼴을 당하면서 꼭 이일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든 것이다. 근무지의 출입문은 자동잠금장치가 되어있다. 잠금장치는 문을 닫았을 경우만 작동하고 열어놓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냉난방 효율과 방범 기능, 벌레 및 해충 등의 유입을 막기 위해 꼭 닫고 다니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 신경하게 열고 다니는 입주민이 부지기수다. 문을 열어놓고 이동한 입주민에 대해서는, 미리 작성해 놓은 안내문을 문에 꽂아놓는 것으로 계도하고 있다. 택배나 배달하는 사람들이 열어놓은 경우에도 쫓아다니며 닫고 다니길 권유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타일 공사로 이중 출입문 중 안쪽의 잠금장치가 없는 문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잠금장치가 설치된 문마저 열어놓으면, 한기로 인해 난방 효율이 떨어져 금방 통로가 싸늘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즉, 민감하게 CCTV를 보면서 출입문 상태를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밤 열한 시가 넘어갈 무렵, 잠시 다른 일을 하느라 확인하지 못하다가 CCTV를 보니 출입문이 열려있었다.  영상을 되돌려 본 결과, 여성 두 명이 들어오면서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곧바로 안내문을 입주 호실의 출입문에 끼워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근무하러 들어오니, 전임근무자 왈 "안내문을 받은 젊은 남자 입주민이 전화를 해서 난리를 쳤고, 오늘 아홉 시경 방문해서 CCTV를 보겠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일도 못하고  오전 내내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포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후 세 시경 전화가 왔다. CCTV를 보러 방재실 앞에 와있다고 해서 들어오라고 말했는데, 대뜸 "문 열어 o발" 한다. 문을 열어주니 들어온 젊은 남자 입주민은 흥분한 상태였고, 손에 들은 안내문을 흔들면서 "입주민에게 이런 걸 보낼 수 있어!"라고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조치였기에 전후 사정을 설명했으나, 막무가내였고, 거의 반말 조로 기분 나쁘다는 점만 말했다. 나도 언성이 높아지면서 다른 상황으로 발전될 개연성이 충분했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함을 인지하고, "CCTV 확인해서 문 열고 들어왔으면,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때서야 약간은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사과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CCTV를 보고 난 후 사과를 받고 상황이 끝나긴 했지만, 위협적인 태도로 모멸감을 준 것은 한동안 잊히지 않다. 그리고 '계속 이런 곳에서 근무해야 하나?' 하는 '시험에 드는 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지금 나의 마음은 정리되었지만, '이런 곳에 근무하는 사람은 큰소리치고 위협해도 된다.'라는 젊은이의 사고가 더 걱정되는 사건이었다.


최대한 늦게까지 현역으로 남아 있으려 시작했지만, '시험에 드는 순간'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있다. 또 앞으로는 어떤 '시험에 드는 순간'이 다가올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영표 전 축구국가대표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기부여 강의에서 한 말이 기억난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지금 나의 위치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해야 되는 일'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버텨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과정이, 결국 좋은 결과로 귀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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