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넋두리를 한다며, '나를 울고 웃게 하는 놈이 있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여기서 놈이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글에서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생명이 없는 무기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놈 저놈 하였다. 바로 그 자동화재탐설비가 나의 예의 없음에 대해 보복하려는 듯, 제대로 심술을 부리는 일이 있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화재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계속되는 화재경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길 바랐는데...... 침실 바로 옆에 있는 방재실의 화재수신기 주음향 장치에서 화재경보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시계는 새벽 한 시 오십팔 분을 가리키고 있다. 전에도 몇 번 새벽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지만, 비화재보 방지 기능이 작동하여 스스로 원상 복구되곤 했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려니 생각했다. 일어나 수신기의 주음향 정지 버튼을 누르려하는데, 실제 화재경보로 전환되어 본격적으로 사이렌이 울리면서 대피 안내방송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화재수신기에 표시된 발화층은 3층이었다. 언뜻 실제 화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잘 때 입었던 반바지에 반팔티 차림으로 쏜살같이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올라간 3층에는 몇몇 입주민이 대충 옷을 걸친 채 대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통로를 빠르게 지나가며 냄새나 연기가 나는지 확인했지만, 화재의 기미를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피를 하던 입주민이 옆사람에게 "타는 냄새나지 않아?" 하며 물어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냄새가 의심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내 후각 기능이 약해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여성 입주민에게 화재가 의심되는 통로를 지나가면서 냄새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성 입주민은 별 냄새는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곧바로 외부로 나가 3층 발코니 쪽에 있는 눈 덮인 난간 위로 지나가면서 발코니 측 창문을 통해 화재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3층만 발코니 시설이 되어있었다. 화재의 낌새가 없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방재실로 와서 화재설비 연동정지 버튼을 눌렀다. 아우성대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화재경보의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여서 다시 3층으로 올라가 해당 호실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화재가 감지된 소화전 중계기에는 여덟 호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다섯 호실은 초인종을 눌러 내부의 감지기를 확인하였지만, 세 호실은 부재중이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화재가 아닌 것은 확인했으나,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 맘까지 해제시킬 수는 없었다. 3층을 주기적으로 순찰하면서 밤을 꼬박 새 버렸다. 마음의 여유도 없거니와 입이 깔깔해서 아침식사는 걸렀다. 교대하러 들어온 윗사람과 의논해서 화재수신기를 복구시켜 보았다. 제대로 복구되는 것을 보고 감지기 오작동이었던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나는 세 호실까지 다 확인하여 원인을 식별한 후 화재수신기를 복구시킬 요량이었지만, 윗사람의 결정을 따랐다.
근무 교대를 한 후, 지하철을 타고 줄곧 서서 가면서 온갖 잡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실제 화재라면, 눈치 보며 대피하지 않은 입주민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부재중인 호실에서 불이 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화재 경보의 원인이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내방송은 어떻게 해줄 것인가? 그리고 아무리 급하고 절박해도 눈 덮인 좁은 발코니 난간을 지나간 위험천만한 행동이 옳았는지?.... 지하철 손잡이에 체중을 의지한 채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졸았다. 그제야 잠을 두 시간도 못 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이곳에 근무하면서 제일 길고 긴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하룻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운 여파는 오래갔다. 하루 쉬고 들어간 다음 근무날에도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상황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 상황이 또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사례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시설관리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덩어리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의 근무여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재경보가 울려서 입주민들의 원성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사례도 많았다. 또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시설관리 일자리를 떠나는 경우도 빈번했다. 심지어 입주민의 원성이 두려워서 화재경보 설비의 전원을 꺼놓고 있다가, 실제 화재가 발생하여 책임을 물게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실 상황을 알아보고 나서, 이 시간에도 노심초사하며 근무하고 있는 수많은 시설관리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찐하게 경험하고, 더 깊이 들어가서 살펴본 화재경보 오작동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나의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것이 많았다. 그냥 경험 한 번 제대로 했다 하고 지나기에는 뭔가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관점에서 현재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화재경보 오작동이 대피 당사자인 입주민을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기 십상이고, 시설관리자의 근무의욕을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입주민들로 하여금 으레 오작동이려니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대피에 대한 의욕을 떨어트린다. 이번 내가 겪은 화재경보의 경우도 많은 수의 입주민은 대피하지 않았다. 대피하지 않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원망과 짜증스러운 감정을 해소하는 대상이 시설관리자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설관리자들의 근무의욕 저하로 연결되는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더구나 이번 경우처럼 화재경보 발생시간이 새벽시간대이거나 몇 번을 반복한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그런데 해결 방안이 요원해 보인다는 것, 이것이 훨씬 문제다. 노후 감지기를 교차회로 감지 방식 등 성능이 좋은 감지기로 교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입주민이 막대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배관과 전선들이 벽 속에 설치된 기존 설비들을 전면 교체하려면 거의 철거 수준의 재 공사가 요구된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 건축물에 적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들 말한다.
두 번째는 화재경보로 인한 대응으로 휴게 시간의 손실이 있어도 아무것도 보상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휴게 시간이 00시부터 06시까지로 되어있으나, 화재경보 시에 대응을 해야 한다면 대기시간으로 간주해서 근로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상 시설관리자를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적용하여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노동 강도가 약하고 지속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규정하여 근로기준법 적용의 제외를 인정하고 있었다. 계약서와 취업규칙에도 승인받은 것을 근거로 근로시간, 휴게 및 휴일의 적용에서 제외함을 명시했고, 업무상 필요한 경우 야간(22:00~06:00), 휴일근로를 실시하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교묘하게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근로기준법의 예외자로 분류되어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54조에는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어 법 조항 간 견강부회의 요소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악법의 소지가 있는 '감시단속적 근로자' 관련 법 조항을 근로자보다는 사용자 입장에서 적용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손해를 감수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근로하고 있는 사람들의 아픈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생계에 부담이 없지만, 치열하게 경제적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낮은 임금에 노동력의 과다 제공, 그러면서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법의 맹점에 골탕을 먹고 있었다. 하루빨리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어 화재경보 오작동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과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권리 보장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승인요건인 감시단속적 근로의 기준, 휴게시간의 기준 등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