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면시간이 무척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인생이 유한한데도, 그나마 3분의 1 가량을 잠으로 허비해야 한다는 것을 무척 못마땅해했다. 잠을 자야 할 시간에 단지 아깝다는 생각 만으로 깨어있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야행성 인간이 되어갔다. 낮 동안 그 많은 시간을 꾸무럭거리며 보내고는 야근한다고 부산을 떨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인간관계 핑계 삼아 새벽까지 술 들이붓고 제 시간 출근에 허덕거리던 기억의 편린들이 떠오른다. 모처럼 가족들과 저녁 상 물린 날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마음 따라 인터넷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늦게 잠드는 게 예사였다. 그러니 매일 아침잠이 덜 깬 멍한 눈으로 좀비처럼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뿐인가.제시간에온전히 자지 못한 여파로 수업시간에 책상을 붙잡고 옆으로 쓰러졌던 추억(?), 전철 타고 가다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고 종점까지 가서 되돌아온기억도 부지기수다. 시험 전날 밤새 벼락치기 하고 정작 시험은 망쳤던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중요한 발표 준비를 잘해놓고수면 부족으로 멍해져 엉망진창으로 끝내야 했던 일도 있었다. 이것이 모두 잠자는 시간을 업신여겨 생긴 일들이다. 이제와 돌아보면 잠자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삶이 더 황폐해져 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 인생에 있어 잠 자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한 어리석은 행동의 결과였다.
어리석은 생각에 하찮게 여겼던 '잠'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 건강과 행복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일 수도 있다. 충분한 잠은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고 면역력이 강해져 질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충분하지 못한 잠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지고, 면역체계가 약해지며, 만성적 피로와 질병의 위험이 높아지게 만든다. 하루 6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은 7시간 이상을 자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30%나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의학계에서도 사람의 적정 수면시간을 7시간으로 권장하고 있다.'잠'은 정신에 기운을 넣어주는 영양소이자, 면역력을 축적시키는 시간이고, 회복과 수리의 시간이다. 그래서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고, 어쩌면 운동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근무형태가 24시간 근무, 24시간 휴식의 강행군이다. 물론 휴일도 강행군은 계속된다. 근무 교대는 아침 여덟 시에 하는데 아침 식사, 이동 소요시간 등을 고려하면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근무할 때도 식사하고 아침 순찰을 나가려면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매일 똑같이 다섯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근무형태의 가장 큰 핸디캡은 컨디션 조절이 어렵다는 것이다. 일곱 시간의 수면시간을 확보하려면, 최소한 열시 반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야행성 습관 덕에 잠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곧바로 잠들기는 정말 어려웠다. 또 근무하는 날도 취침 가능한 시간이 6시간이라고는 되어있지만, 소음과 빛으로 인한 수면방해와 화재경보, 민원으로 숙면은 애초에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다음날 퇴근해서 두 시간여 잠을 보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늘 부족한 잠 때문에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제 익숙해 졌다고는 하나, 잠을 푹 자야 한다는 부담은 늘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런 근무형태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일근'이라고 불리는 주 5일의 정상 근무형태이다. 차선은 '주당비 3교대', '주주당비 4교대', '주주주당비 5교대'.........로 조금씩 수월해지는 근무형태이다. 여러군데의 '일근'직에 이력서를 넣어 보기는 했는데, 커다란 벽이 있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남들도 좋게 생각한다는 진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무려 천명에 가까운 조회수에, 150:1의 경쟁률을 보이는 곳도 있었으니까. 나와 같은 근무형태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욕구가 부족한 '잠'에 의한 컨디션 조절 어려움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정상적 근무형태로의 이직을 시도해 보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달 전, 주기적으로 등산을 같이 다녔던 친구가 취직했다고 했다. 수많은 자격증 도전에 성공해서 '자격증 부자'로 지내던 친구였다. 셀수없을 만큼 많은 곳에 이력서를 내봤지만' 나이'라는 핸디캡을 넘어서지 못했었다. 이제 취직은 되었지만, 나와 같은 '당비 2교대'의 수렁속에 빠지게 되었다. 또 얼마 전에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가 전화해서 반갑게 취직했음을 알렸다. 놀다보니 뭉텅이로 부과되는 건강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다. 이 친구도 '당비 2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쨌든 나와 같은 고난의 길을 걷게된 동지가 많아져 동병상련의 정을 느낄 수 있어 좋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들도 이제부터 어떻게 '잠'을 컨트롤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받았다. '액티브 시니어'가 되기위해 도전을 시작한 친구들이 '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