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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Apr 01. 2023

제대로 망쳐버린 2023  LA마라톤

제1편: 버지니아에서 캘리포니아까지의 로드 트립 삼천 마일

2023년 3월 19일은 LA 마라톤이 있는 날이었다. 마라톤을 뛰기 위해 I40번 (미국 동부에서 서부를 거의 직선으로 관통하는 가장 빠른 고속도로)을 타고 로드트립을시작했다. 또 캘리의 CA1해변도로에서 자전거를 탈 계획으로 3월 11일 새벽, 설레는 마음으로 이삿짐 수준의 여행짐과 자전거를 차에 실었다. 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뒤뜰의 배나무에게 올핸 하얀 네 눈꽃송이를 놓칠 것 같다며 나 없어도 꽃 잘 피우라고 행복하게 안녕을 고했다. 비행기로의 이동은 빠르고 편해서 좋지만 각 주마다 지닌 특유의 자연 풍경과 지역특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피곤해도 미국 국내 여행을 할 땐 가능한 한 로드트립을 한다. 애리조나나 캘리포니아등 사막에 우뚝 서있는 선인장들 아니 선인장 나무에서 느끼는 이국적 정취에서 비로소 아,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났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700마일을 달리고 도착한 첫날 테네시 주의 네쉬빌 거리는 차가운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저녁을 먹기 위해 간 매운 치킨 텐더로 유명한 Hattie B’s Hot Chicken (2222 8th Ave S, Nashville, TN 37204-2206, T: 615-970-3010) 앞엔 비를 맞으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꼭 이렇게 까지 하며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줄에 끼어 덜덜 비를 맞으며 30분을 기다렸고 호기심에 Dam Hot (제일 매운맛에서 두 번째로 매운맛) 치킨 텐더와 치킨 샌드위치를 시켰다. 그런데 매운 걸 떠나 맛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서 한입 먹고 한참을 몽롱하게 있다가 결국 못 먹고 싸가지고 와서 호텔에 와서는 라면을 끓여 그 국물에 햇반을 말아먹었다. 헤롱헤롱 정신을 못 차리는 우리에게 웨이트리스는 씩 웃으며 꿀소스를 듬뿍 가져다준다. 크-억 ~, 역시 한국 사람은 비 오는 날엔 뜨끈한 라면을 먹어야 해, 라면을 먹고 나서 남편이 한 말이다. ^^;;

너무 매워 못 먹은 Hattie B’s 의 치킨텐더
Hattie B’s의 치킨샌드위치, 감자튀김하고 햄버거 빵만 걷어 먹었다. 감자튀김은 아주 바삭바삭 맛있었는데 안 매운 걸 시켰다면 치킨텐더도 맛있을 것 같았다 ^^;;

이튿날 또다시 700마일을 달려 오클라호마의 오클라호마 시에 도착했다. 저녁으로 구글 검색 4.4를 얻은 베트남 국수를 먹기로 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많은 걸 본 남편은 오늘은 성공--하며 의기양양 테이블에 앉는다. 국수를 좋아하는 남편은 Pho국수를 시켰고 국수를 싫어하는 나는 포크 찹을 시켰다. 그런데 포크 찹에 따라 나온 나이프가 너무 더럽고 녹도 쓸어 있었다. 지저분하다고 다른 걸로 달라고 했더니 주인인 것 같은 베트남 여자가 시커먼 가위를 들고 와선 나이프가 다 떨어졌으니 가위로 잘라먹으란다. 너무 황당해서 당신 같으면 그렇게 먹겠냐고 묻자 얼굴을 구기며 되돌아가더니 한참 있다 와서 하나 찾았다며 내미는 나이프가 여전히 더럽고 녹이 슬었다. 헉- 나이프를 정크야드에서 주워오나. 포크찹에 따라 나온 야채와 밥도 나이프만큼이나 지저분하고 오래돼 보인다. 남편도 국수맛이 좀 이상하다고 한 젓가락 떠먹고 만다. 옆에 있는 테이블을 힐끗 쳐다보니 비슷한 음식들을 다들 맛있게 잘도 먹는다. 먹고 죽으라는 건가 아님 우리가 유별난 건가, 쩝- -

다행인 건 애피타이저로 시킨 에그롤은 그나마 따끈하다. 펄펄 끓는 뜨거운 기름 속에서 세균인들 살아남을 수 있겠어, 죽은 세균 시체는 단백질일 거고 익은 단백질은 건강에도 좋을 거야, 자 먹어- 하며 남편이 흐흑 웃으며 에그롤을 하나 집어 건넨다. 에그롤을 하나씩 먹고 호텔에 와서 또 라면을 끓여 먹었다. 화가 나 팁은 고사하고 음식값도 환불받고 싶었지만 상한 기분으로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주인 여자의 태도를 보니 상식이 안 통할 것 같았고 더 말해봤자 기운만 빠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음식값도 카드는 안되고 현금만 받는단다. 또 한 번 어이가 없었지만 음식값을 내며 다음부턴 좀 신선한 음식과 깨끗한 실버웨어를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나름대로 우아하게 말했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의 남편이지 싶은 계산대의 남자는 그나마 기대했던 I am sorry라는 말대신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팍 구긴다. 사실 불행하게도 어쩌다 한국 혹은 아시안 식당에서 만나는 이런 상황들이 난 잘 이해가 안 가고 불편하다. 미국식당의 경우 음식이 좀 짜다고만 해도 정중하게 사과하며 다시 만들어다 주고 어떤 땐 돈을 받지 않아 우리가 더 미안할 경우도 있다. 구글에 평점 0이 없어 어쩔 수 없이 1 올리고 평점 4.4에 속지 말라고 후기를 달았다.

호텔에 와서 ISOPRO(캠핑용 부탄가스)와 캠핑컵에 이틀 연속 끓여 먹은 라면

텍사스를 거쳐 다음날 도착한 뉴멕시코의 알버쿼키 또 그다음 날 알칸사와 캘리부터는 음식도 정갈하고 맛있었고 사람들도 친절했다. 베이커 필드의 Mango Haus(700 Truxtun Ave, Bakersfield, CA 93301, T: 661- 717-2138)에서 먹은 아침은 유기농에 정성이 듬뿍 들어간 팬케이크와 감자, 소세지가 무척 담백하고 맛있었다. 식당 매니저라는 Johnny는 자기도 러너라며 LA 날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버지니아에서 뛰는 것과 다를 수 있다며 몸 조심하라고 나의  LA 마라톤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이제부턴 제발 이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영혼들만 만나게 되기를…고대하면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Mango Haus의 유기농 아침 정식, 담백 깔끔 ^^
Mango Haus 유기농 팬케익


오일 간의 긴 운전을 마치고 3월 15일 샌프란시스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샌 브르노 산(San Bruno mountain) 주변을 끼고 흐르는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나니 스트라바에 16.13마일 찍혔다. 자전거를 타고나서 구글 검색에서 찾아낸 Hidden Spot(303 Grand Ave, South San Francisco, CA 94080 T: 650-872-4484)의 햄버거와 양념 감자튀김을 먹으며 흠흠 -- 4.7 평점 받을 만-- 역시 미국사람은 햄버거를 먹어줘야 돼, 이번엔 Hidden Spot의 햄버거를 먹고 나서 남편이 한 말이다. 한국 음식 먹고 싶을 땐 한국인 미국음식 먹고 나서 만족하면 미국인이 되는 사람이다. 음식을 향한 그런 애절한 행동이 매번 웃기고 잼있어 깔깔거린다. 그 덕에 오클라호마의 베트남 식당에서와 같은 에피소드도 많다. ^^

여러 날 이어진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했지만 일상을 떠난 설렘과 흥분 드디어 복잡하고 역동적인 그  LA 시내 한가운데를 내 맘대로 다섯 시간 달릴 수 있다는 생각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캘리의 PCH(Pacific Coast Highway, CA1이라고도 함) 해변 도로를 일주일 동안 자전거로 맘껏 탐닉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행복 지수가 이백을 향해 막 치솟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LA마라톤 망해버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Stuffed Sopaipilla, 매콤한 맛이 오매불망 한국 음식만 맛있다고 우기는 남편도 아주 좋아했다

알버쿼키의 Sadie’s of New Mexico(15 Hotel Cir NE, Albuquerque, NM87123 T: 505-296-6940) 식당이었는데 양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시켜서 둘이 먹고도 남았다. 남은 걸 싸달라고 하니까 사이드 빵, 야채, 소스를 새로 담아서 로드 트립 잘하라고 정성껏 싸준다. 맛도 아주 좋고 정말 친절했다. 구글 평점 4.3, 3K Voted, 베트남 식당의 가슴아픈(?) 실패 때문에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성공 ^^

따끈따끈, 바삭바삭 Tortilla Chips
텍사스 어디선가 자전거로 횡단하는 바이커가 멋져 보여 차에서 찰칵, 미국 자전거 횡단은 꿈인기도한데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짓 수 ;-)
오클라호마 농장에 이렇게 붙들려있는 소들을 보고 소고기를 꼭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음 :-(
텍사스인지 뉴멕시코인지 휴게실 변기가 영화에서 본 감옥 변기와 똑같아 신기해서 한컷
알칸사인지 캘리인지 모래와 자갈만 있는 사막땅에 핀 꽃, 전갈 뱀 이런 것 때문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가 붙어 들어가진 못하고 노란 꽃이 너무 예뻐 경고판 밑에 핀 꽃을 찰칵
구글 이미지에서 찾아보니까 Desert sandverbena 꽃이라고 함
노란 꽃 옆의 이름 모를 식물, 생명력이 강해 보임
베이커필드 가는 도로옆 사막에 자란 선인장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이경로를 따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자 스트라바에 16.13 마일 찍혔음
여기서부터는 사우스 샌프란 시스코 베이의 풍경
Oyster Point에서 낚시하는 사람에게 물고기 잡아서 뭐 할거냐고 묻자 구어서 소금 후추를 뿌린 다음 마늘 버터 발라 먹으면 아주 맛있대나 :)
여기부터는 베이 언덕에 피어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봄꽃들
물개도 있었는데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려 셀폰에 담을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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