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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Mar 16. 2024

소나기 속에 핀 무지개

나의 전설 아이템

무지개는 보통 태양빛의 굴절에 의해 빛이 하나의 매질에서 다른 매질로 진행해 나갈 때 매질의 경계면에서 빛이 꺾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굴절현상은 자연적으로 보이는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서인지 무지개는 주로 비가 내린 후에 생긴다고 한다. 비가 내린 후 하늘 위로 알록달록 피어오른 무지개는 신비하기도 하지만 희망을 주기도 하는데 자전거나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어쩌다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하늘이나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무지개가 피는 것을 보곤 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 푸른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고 있다 보면 그 투명한 아름다움이 더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땅 위로 튀어 오르는 빗방울과 함께 피어오르는 무지개를 보고 희망에 부풀어 가슴이 설렌 적도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의 일이었으니 몇 해 전의 일이다. 어느 직장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직장이라는 것이 일자체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늘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인데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어디에서나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늘 미운털 박힌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또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미운 오리새끼가 되기도 한다.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미운오리새끼가 되어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나름 꽤 심각했던 시간들이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욱-하는 한국사람 특유의 이 성향도 문젠데 지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나름 꽤 아팠었기에 이젠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DNA에 각인된 이 성격 참 고치기 쉽지 않다. 그날은 결국 동료들과의 비루한 기싸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회의에서 사용할 파워포인트에서 명사 앞에 the를 붙여야 하는데 a를 붙였다고 비아냥 거리던 상사의 말에 폭발해 랩탑을 던져 부서 버리고 사무실을 뛰쳐나왔던 날이다. 덕분에 직장을 옮기느라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유의미한 인간관계와 타인에게서 오는 부정적인 말들에 대한 마음의 흐름을 고민해 보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에 그날의 일을 후회하진 않는다. 초등학교 때 숙제로 억지로 썼던 일기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자진해서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먼지 낀 인문학과 마음 다스림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던 날이기도 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먹고사는 거에 관계된 책만 읽었다. 지금은 조금 좋지 않았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하고 있다. 그렇게 사무실을 뛰쳐나와 집에 와서 그날도 달렸다.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분노로 흥분된 마음 때문에 로드 바이크를 타면 차와 부딪혀 죽을 것 같았고 산악자전거를 타면 무모하게 다운힐을 하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동네 트레일을 거쳐 버크 공원을 돌아 집으로 달려오는데 맑던 하늘에 잿빛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때문이었는지 그해 여름 이곳의 날씨는 플로리다처럼 더웠고 오전엔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가 오후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나기를 퍼붓곤 했다. 그리곤 저 앞에서 그렇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뚫고 땅 위로 튀어 오르는 빗물과 함께 무지개가 피는 것이었다. 꾹꾹 누르고 있었던 설움이 갑자기 울컥 올라왔다. 그 자리에 서서 소나기 속에서 솟아오르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신파드라마 속 연인을 잃은 사람처럼 한참을 흐느꼈다. 그 카타르시스란. 그때의 감정과 희망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그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하다 보니 지금은 브런치에도 들어와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다. 


게임에서는 어느 게임이던 배경은 다르지만 스토리의 주제는 대부분 선과 악 혹은 빛과 어둠의 대결로 귀결이 된다. 게임플레이어인 나는 지구의 수호자 혹은 빛의 선구자가 되어 악과 어둠을 물리치는 전사가 된다. 경험치에 따라 악의 화신을 물리치고 던젼마스터가 되면 그 보상으로 전설 아이템이 떨어진다. 그 아이템은 희소성이 커서 획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게이머의 로망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검이나 총 같은 무기가 되고 어떤 땐 갑옷이나 방패 혹은 투구나 장화가 될 수도 있다. 그 전설 아이템을 얻어 장착하게 되면 온갖 어둠과 악으로부터 든든한 보호막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거의 무한한 힘을 얻게 된다. 불투명한 삶이라는 괴물로부터 무한한 힘을 내뿜어 내 내면을 보호해 주고 검이 되어주는 전설 아이템을 그렇게 찾았다. 이젠 갑자기 쏟아졌던 소나기 속의 무지개로 위로를 얻고 독서와 글쓰기라는 아이템을 찾게 해 준 그때 그 힘겨웠던 던젼에서의 몸무림에 감사한다. 등단작가가 되고 싶어서 혹은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서 혹은 나처럼 내면을 치유해 주는 것이 좋아서라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겠지만 그 이유야 어떻든 모든 브런치 작가와 독자들이 독서와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의미 있는 내적 성장을 이루길 응원하며 어지럽게 배회하던 마음에 작은 불빛이 되어주었던 책들을 소개해본다. 


Running is a kind of dreaming, J.M Thompson:  몇 년 전 Barnes&Noble 신간 코너에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오늘 구글검색을 해보니 아직 한국어 번역본은 안 나온 것 같다. 한때 우울증으로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도 빠졌던 심리학자가 울트라마라톤을 하면서 우울증을 극복, 힘들기로 그 유명한 극한 마라톤 타호 205마일을 달리면서 알파인 호수의 트레일 자연경관과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이어진 자신의 내면 성찰을 통해 우울증을 이겨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어 감동적이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The Untethered Soul), 마이클 싱어(Michael A. Singer): 영어원본, 한국어 번역본 둘 다 좋았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배너사진은 몇 년 전 이 이야기의 주제가 된 달리기를 하다 찍은 빗속의 무지개 사진이고 아래는 자전거를 타다 맑은 하늘에 핀 무지개가 우아하고 신비해 셀폰에 담았다. 자연은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늘 위로를 준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해가 다르게 파괴되는 자연이 몹시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 


2023년 1월 28일 우리 동네, 헤더가든 앞에서
2023년 1월 28일 버크공원
2023년 2월 1일 산악자전거 트레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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