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세렝게티 속으로

by 에트바스

가을의 제주는 한적하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계속될수록 내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혼자인 여행자라면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 몇 배는 커졌다. 아무도 없는 섬에 혼자만 남아있는 것 같은 마음이 말이다. 맑은 날은 지난 한 달 동안 손에 꼽을 만큼 드물고, 날씨만큼이나 나의 제주생활은 그리 즐겁지 못했다. 그래도 그중에 좋은 건, 맑고 쾌청한 날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행복한 마음이 밀려온다는 점이다.


- 별 보러 갈래?


어느 밤, 선선한 밤공기가 살갗 아래로 스며들어 막 샤워라도 한 것처럼 상쾌한 밤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제주에서 가장 번화한, 그래서 네온사인이 쉴틈 없는 시내 한복판에서도 별이 반짝였다. 나는 허겁지겁 카메라를 챙겨 들었다. 차 타고 별 보러 가자 룸메이트에게 말했더니, 그 애도 겉옷을 챙겨 입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제주 날씨는 바쁘게 변한다. 비바람이 불다가도 쾌청해지도, 하늘이 새파랗다가도 구름 떼가 갑자기 몰려오기도 했다. 아직 하늘은 맑지만, 중산간*에 가면 어떨지 모르는 일이었다. 밤사이 구름이 없다는 일기예보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중산간은 한라산 중턱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고지대를 말하는데, 제주가 처음인 사람들은 종종 중간산과 헷갈린다. 어쩌면 중간산이 더 어울리는 것도 같고.


삼십여 분을 달려 중산간 교래리에 도착했다. 가로등도 없는 새까만 밤, 처음인 길이라 천천히 달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답사를 와볼걸. 제주에서는 내비게이션이 그리 탐탁지 않을 때가 많다. 한 날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마을길을 가다가 길이 없어져서 한참을 후진으로 나온 적도 있었다. 좁은 길을 오가며 몇 번 유턴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도착한 곳. 제주의 세렝게티라 불리는 한 목장이었다.


세렝게티라고 불리는 까닭은 넓게 펼쳐진 초원이 유명해서다. 여행자들의 말에 따르면 특히 밤에 별구경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지난 몇 주간 나는 틈만 나면 여행지도 만드는 일에 시간을 할애했다. 맛있거나 멋있다고 소문들은 곳을 차곡차곡 모아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이 목장도 그중에 하나였다. 광고 촬영 장소로 유명해지면서 관광객들이 조금씩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관광지가 아닌 사유지인데도 목장 주인도 그들의 방문을 슬쩍 눈감아 주는 모양이었다. 목장 입구에 도착했지만, 출입구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조금 더 차를 타고 가니 작은 샛문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통해 목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력이 좋지 않다는 것에 종종 원망스러움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깨끗하게 볼 필요가 있냐며, 눈이 나쁜데도 안경을 쓰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적어도 저 앞에 오는 게 몇 번 버스인지는 알아야 불편하지가 않다. 체질상 안경은 불편하고, 앞은 깨끗하게 보고 싶어 콘택트렌즈를 자주 이용했다. 렌즈가 버스번호까진 잘 보이게 해 준대도, 한계는 있다. 바로 이런 때다. 시력이 좋다면 얼마나 더 멋진 별밤을 보았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위로 보이는 검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은 나를 황홀하게 했다. 언젠가 세렝게티를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밤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언젠가 시골집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그 동네는 함박골이라 불렸다. 아빠가 나고 자란 고향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던 곳이었다. 나는 그 집의 쪽방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일이지만, 명절마다 고모와 삼촌, 사촌 언니, 오빠, 조카들이 모였다. 나는 그때마다 내 또래의 조카들과 어울리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함박골은 산 중턱쯤 있는 작은 마을인데, 밤마다 별이 그렇게 반짝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가지붕과 나무마루를 가졌던 동네 집들은 조금씩 현대식으로 수리하던 어느 해에는 흙길이었던 마을 입구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느티나무 아래에도 시멘트로 만든 큰 평상이 생겼다. 명절은 맞은 아이들은 밤이 되면 그곳에 바짝 누워 별을 보곤 했다. 가끔은 소원 빌 새도 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정말인가 싶어서 몇 번이나 눈을 꿈뻑였다. 시골의 밤은 반짝였고, 또 조용했다.






지금 우리는 제주의 세렝게티 한가운데 서있다. 사방으로 불어대는 바람은 매서웠지만, 노련함 없는 아마추어 사진가에게도 그 별들은 너그러웠다. 한겨울에 입을 법한 외투가 무색하게 추웠지만, 목이 떨어질 것같이 아프도록 별을 올려다 보고, 또 올려다봤다. 핸드폰의 플래시 없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별빛만이 걸음을 안내했다. 혼자였다면 아마 벌써 집에 돌아갔을 터였다. 이제는 사진을 찍을 차례다.


출발하기 직전에 별 사진 찍는 법을 속성으로 공부하고 왔다. 두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게 별을 찍으려면, 우선 셔터 속도를 최대한 늦춰서 사방의 빛을 끌어모아야 한다. 너무 늦으면 별 궤적이 찍히므로, 콕 박힌 별을 찍으려면 20초 내외가 좋다. 셔터 속도가 늦으면 작은 흔들림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삼각대는 필수다. 카메라의 초점을 조절할 수 있다면, 밝은 별에 초점을 맞춘다. 빛을 많이 받아들이는 게 유리하므로 조리개는 최대로 개방하는 게 좋지만, 별빛 외의 다른 빛들(달빛, 도심의 조명 등)은 방해가 되니 그 점도 알아두면 좋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사진기 셔터를 누르며 하늘의 별을 담았다. 이슬을 잔뜩 머금은 잔디 위에 작은 삼각대와 카메라를 세워두고, 우리는 번갈아가며 서로의 사진을 찍었다. 뷰파인더로 옅게 보이는 나무들 지도삼아, 한 명이 나무 곁에 서면 다른 한 명은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가 빛을 모으는 시간을 기다렸다. 얼어버린 발을 구르고, 양 손에 입김을 불면서 하늘을 담아냈다.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직 눈만큼 좋은 카메라는 없는 모양이다. 현대의 카메라 기술은 그렇다 치더라도, 실력을 논하기도 민망한 내 사진 기술로는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다. 눈 앞에 쏟아지는 별을 모두 담아내기는 역부족이다. 두 눈으로 보는 것만큼 멋진 사진은 찍을 수가 없었다. 겨우 별이 반짝이는 사진을 몇 장 건져내고 우리는 또 마냥 하늘을 바라봤다. 서로의 말소리 대신 찬 바람소리만 들린다. 손발이 시린 건 잠시 잊은 채였다.





세렝게티라 불렸던 그 목장은 이제 크고 새빨간 글자로 쓰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붙었다. 많은 사람이 다녀가면서 아무렇게나 쓰레기가 버려졌다고 했다. 목장의 잔디가 밟히는 일에 그날의 나도 한 몫한 것 같아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아 교래리를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려 몇 번이고 살피게 된다. 몇 년이 지나 또 별구경을 하러 중산간을 헤맨 적이 있다. 혹시나 싶어 목장 옆 길을 지났는데, 그 하늘에는 별도 달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내가 본 그날의 별밤이 꿈이었던 것처럼.


제주를 여행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묻는 말들에 선뜻 대답을 못 했었다. 오늘부터는 말할 수 있겠다. 2015년 11월의 밤, 중산간의 어느 목장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