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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14. 2023

이혼을 잘하는 방법

이혼하면 어때 #26


어차피 결정된 이혼이라면 이혼을 잘하는 것이 낫다.


우리 부부는 이혼을 암묵적으로 결심하고 표정과 말투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얼핏 생각해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며, 이를 꽉 무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진짜 이혼을 결심하면 두 사람 모두 조심스러워진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상대방이 나에게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이롭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표정과 말투가 부드러웠지만 단호했고,

쓸데없는 감정의 언어를 섞지 않았다.


그나마 잘된 이혼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많은 재산을 나눠 갖는 것이다. 수 십억, 수 백억의 재산이 아니라도 혼자 살아가는 비용은 단 한 푼도 아쉬운 법이니까.


재산분할을 논의하자 전처는 집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집은 내가 소유했으면 좋겠어. X억 줄게. 지금 거품이 많이 껴서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해."


생각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빨리 헤어지고 싶은 마음에 알았다고 대답하려고 했다. 이 사실을 아는 지인들에게 털어놓으니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미쳤어? 너무 손해보자나. 절대 안된다고 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그들의 말이 맞겠지. 하지만 나는 결국 오케이 했고 금액에 대한 부분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전처는 못마땅했는지 해당 집을 부동산에 내놨다. 그렇게 두어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매매를 타진했지만 코로나가 끝나 집 값이 하락하는 추세여서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집을 인수하기로 했다. 처음 전처가 제안한 금액의 1.5배를 주기로 하면서. 물론 집 시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었지만 나름대로 두 가지 정도의 계산이 있었다.


첫째는 그동안 내 아내로 살아온 나의 작은 배려였고, 두 번째는 서울 사대문 안의 집값은 조금씩이라도 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집값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부동산 규제가 장기화되면서 곤두박질쳤다. 그것도 운명이거니 하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게 되었다.


그다음 이혼을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신적 무장과 안정이다.

너무 상투적인 단어와 의미이지만 그것은 계속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혼 전후에 찾아오는 공황은 내가 살아온 방향을 무너뜨리고, 때론 모든 의욕과 자신감을 상실시킨다. 이 공황을 빨리 넘기기 위해 나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옷을 사고 피부관리를 하고 책을 읽었다.


결혼 후 무관심했던 패션 스타일링과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피부관리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치장이 아닌 자신감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결국 그 전과 나아지는 것이 없을지언정 자신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인문학 도서와 내적 사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다.


"결혼했는데 돈만 잘 벌면 되지. "


과거엔 결혼으로 내 현실 세계의 구축을 끝냈다고 착각했다. 가정이 있고 든든한 직장이 있으니 그 외의 것들은 풍경이라고.


여가 시간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콘텐츠를 소비하며 도파민을 위한 행위에 집중했다. 무협 소설을 읽으며 손에서 장풍을 쐈고,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판타지 영웅이 되려 했다.


하지만 이혼 후 세상은 낯설었다. NPC의 세상이 아닌 현실의 사람과 사물은 모니터 속 그래픽도 누군가 만들어낸 허구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직장과 가족만 소통하는 것에서 울타리 밖 사람들과 소통하는 언어와 태도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했다.


이혼을 잘 하는 마지막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나와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이불로 잠자리를 한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하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고 아쉬움이 없어야 한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모든 미움과 갈등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 그곳에 남겨두고 아쉬움 없이 떠나야 한다. 결국 나는 홀로 살아가야 하고 그 뒤끝이 길면 길수록 나의 삶은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혼을 잘하는 방법 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안 하는 것이 최선일 테니.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하게 된다면, 혹은 이혼을 했다면 이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결혼에는 이유를 찾지 없지만, 이혼에는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없고, 있어도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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