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 Feb 20. 2023

장미의 바이섹슈얼(bisexual) - 2

이혼하면 어때 #31

"헤헤. 기억해 줘서 고마워요. 오빠. 잘 지냈어요?"


다시 본 그녀는 이전과 달랐다. 적당한 알코올은 그녀에게 부드러움을 선사했고, 구면인 내게 경계심을 풀었다. 돈으로 얻은 시간이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는 분위기였다.


"제가 지명해서 기분 나쁜 것은 아니죠?"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봤다.

"전혀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고 바쁘게 테이블 위의 맥주를 정리하고 따라주었다.


"아. 오빠는 술 안 마시죠?"


그녀의 기억력의 살짝 놀라며, 한편으로 나의 일부를 기억해 주었다는 사소한 관심에 은근히 들떴다.

약 한 시간을 대화하며 자연스레 말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 무례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녀는 혼혈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일본 사람이에요. 엄마는 한국 사람."


동양적이지만 조금은 이질적인 외모, 그리고 심한 덧니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녀는 물어보지 않은 과거를 털어놨다.


"제가 어릴 때 엄마 아빠는 이혼하고, 아빠는 일본으로 돌아갔어요. 몇 년 후에 엄마는 재혼하고..."

"음. 그랬구나." 나는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제 동생이 태어나고.. 저는 계속 이방인처럼 집에서 지내다가 스무 살이 되고 독립했어요."


새아빠와 엄마는 또 다른 자식을 만들었고 그녀의 동생이 되었다. 그렇게 네 명의 식구가 살아왔는데, 동생이 생긴 이후 그녀는 스스로 이 가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와 생활한다고 했다.

20살 초반의 그녀는 처지가 안쓰러웠지만 외모는 반대였다.


"혀에 구슬이 있던데..."


나의 의문에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보여주었다.


"헤헤헤. 이거요?"


혀 중앙에 뚫린 구멍으로 조그만 구슬이 올라와 있었다. 마치 귀걸이 같은 구조였는데 내심 이런 짓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프진 않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요. 이거 제가 혼자 뚫었어요."


소름.

나는 등골이 오싹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그 모습을 즐겼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밥 먹을 때 가끔 음식이 끼는 것 이외에는 불편한 것이 없고, 입 안에서 빙빙 돌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어.

사는 세계가 다른가 보다 하며 넘어가려는 데,

"그리고 애인이 특히 좋아하죠. 이 피어싱은. 뭐. 지금은 없지만. 헤헤."


뭔가 자극적인 충동이 내 안에서 용솟음쳤다. 정확한 실체를 확인할 수 없지만.

가까이서 본 그녀의 문신과 피어싱은 내게는 낯설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코, 입술, 혀 그리고 배꼽까지, 피어싱은 귀를 제외하고 총 네 곳이었다. 특히, 혀 피어싱은 정말 불편할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했다. 혀 중앙을 관통하는 피어스를 뺏을 때 밥알이 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지만, 평범한 나는 죽어도 깨달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되어 헤어질 시간. 그녀는 연락처를 내 핸드폰에 찍어 주었는데 가게 올 일이 있으면 미리 연락 달라고 했다. 특이하고 화려한 외모와 불우한 가정환경은 내게 호기심을 주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이 차도 많고 사는 세계가 너무 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쓴 소설을 읽게 되고 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21살 여자애가 쓴 소설이라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소녀의 문장력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소설뿐만 아니라 스케치 실력도 상당했는데 보통 사람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쓰는 상상의 세계는 매우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며, 빛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녀의 내면도, 그녀의 진정한 정체도.

우리는 몇 차례 더 만나 연인이 되었다.


***


그녀는 새하얗고 길쭉한 팔다리를 갖고 있는 마네킹 같았다.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였고 경계심을 잔뜩 품은 인형 같았다. 말도 없고.


그녀는 술을 좋아했다. (아주 많이)

술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름을 넣은 자동차처럼, 새벽 아침의 장미꽃처럼 피어났다. 말과 애교가 많아지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음주 전후의 차이가 조울증 환자같이 어마어마했는데, 이 정도만 해도 골치 아픈 일이 다반사다.

그녀의 특이한 성정은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


"나 여자 사귀었었어."

헐.


그녀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여자를 사귀는 여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이(bi)겠지만. 사귄 지 얼마 후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는데,


"나 굉장히 유명해. 그쪽에서."


하아. 심지어, 유명하기까지 하단다.



  



    

이전 10화 장미의 바이섹슈얼(bisexual)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