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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05. 2023

'이'밍아웃

이혼하면 어때 #13

이혼에 대한 사정은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어느 날, 남자 화장실에서 한 남직원과 나란히 볼일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 명절로 인한 휴가가 무척이나 긴데 사모님이랑 어디 안 갔다 오세요?"


인사치레로 한 일상 대화지만, 순간 어떻게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보통 명절이거나 긴 휴일이 늘어선 일정에는 서로에게 덕담과 사소한 일정을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생각보다 빠르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아. 네에. 이번에는 그냥 집에 있기로 했어요."


간단하게 대답 했지만, 나중에 그 직원은 나의 표정이 너무 굳어 보여 본인이 어떤 실수를 했나 하고 고민했었다고 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일단 입사하면 중간 퇴직을 하는 경우가 적었다. 소위 말하는 철밥통의 직장으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 팀 안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같이 하며 정년까지 함께한다. 그러므로 일상 중에 석연치 않은 대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팀원들에게는 내가 이혼한 사실을 말해두는 것이 여러모로 괜찮아 보였다.


***


어느 날, 팀 회식을 하는 자리가 생겼다. 우리는 퇴근 후 업무를 벗어나 가볍게 술 한잔을 즐기며 휴식의 나른함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 얼큰하게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쯤 잠시 주목을 시키고 말을 이어갔다.


"저기... 잠시만요."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말을 이어갔다.


"제가 여러분께 알리고 싶은 개인사가 있어요. 별일 아니지만 여러모로 우리 팀에는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팀원들을 둘러보니,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나를 집중했다. 항상 있는 팀 회의나 여러 가지의 주목이 일상이었는데, 이번 만큼은 왠지 긴장되고 쑥스러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세요?"

"무슨 말을 하시려고. 일 폭탄이 떨어지나. 왠지 무섭다."

"오~ 오늘 팀장님이 쏘시나요? 키킥."


"그런건 아니고..."

한 템포 쉬었다가,


"제가 여러모로 부족하여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회사 전체에 알리는 것은 어려워도 우리 팀은 알아야 마음이 좀 편해서 말씀드려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회사에 알리는 것은 제가 상황이 되었을 때 말할 테니, 가급적 다른 분들께 언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


두둥.


당시 회식자리에 참여한 팀원이 아홉명이었는데 표정들이 제각각이었다. 놀람, 당혹, 진지, 근엄, 슬픔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가벼운 웃음까지도.


갑작스런 '이'밍아웃에 모두 한동안 숙연했지만, 곧 나를 위로하고 안타까워했다. 한 팀원이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의외라는 말을 던지며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나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변명 같지만, 정말 성격차이예요."


이렇게 '이'밍아웃이 있은 후 여러 가지로 신경 써준 팀원들이 고마웠다. 어떤 남성 팀원은 저녁식사 약속을 물어보고 꽤 오랜 기간 같이 해주었고, 또 어떤 팀원은 커피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고려하여 커피머신을 선물로 주었다.(전에 있던 커피머신은 전처가 가져가버린 것을 알고. 훗날 그 직원에게는 전자렌지와 청소기를 선물했다.)


그렇게 팀원들에게 이혼을 밝히고 며칠이 지났다. 우리 팀은 서로 사이가 좋아 개인적인 약속이 없으면 항상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 후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던 중 한 여성 팀원이 말했다.


"팀장님. 너무 회사 집만 오가지 마시고, 결혼정보회사나 돌싱 카페 같은데 한 번 가입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너무 불쌍하고 처량해 보였나? 나름대로 전후 변화 없이 지냈건만 그녀가 보는 내 모습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회사로 돌아와 PC 앞에 앉아 네*버로 들어갔다. 검색창에 '돌싱'이란 단어로 검색을 하고 제일 활발해 보이는 몇몇 네*버 카페들을 클릭했다.

대문페이지를 보고 한참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내 주변에 한 명도 없었던 돌싱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물론 회원 중에는 결혼 경험이 없는 사람도 많다는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 클릭 한 번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줄 당시에는 전혀 몰랐고.


***


그렇게 한 해를 지내고 또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연말정산 자료 작성 서류에 법적배우자를 체크하는 항목이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인사담당자와 해당 팀장에게는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두 사람을 찾아갔다.

대면해서 말해야 할 사실이니까.


“제가 사실 작년 초에 이혼했어요.”

".....에고..."


각각 찾아갔지만 두 사람의 반응은 같았다. 놀람, 당혹, 안쓰러움, 위로의 감정이 차례대로 얼굴에 나타났다. 이혼 직후 말하지 못한 것을 이해해줬다. 두 사람 다 나를 위로하며 행정처리에 대한 것은 본인들에게 맡기라며 안심 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라는 말과 함께.


결국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 사실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내 앞에서 짓는 표정과 앞으로 끼게 될 색안경이었다.


나 불쌍한 사람 아니에요. 어쩌면 더 행복할 수도 있죠.


이런 글자를 양복에 새기고 다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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