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성이 바른 아이
이사를 왔다.
후문으로 나가면 곧장 스타벅스와 편의점, 버스정류장에 닿을 수 있고
정문으로 나가면 바로 숲길과 산길의 초입이 이어지는...
아주 앞뒤가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른 그런 곳으로 말이다.
신식 건물과 으리으리한 아울렛, 삐까뻔쩍한 몰, 멀티플렉스를 좋아하는 신랑과
나무와 자연과 하늘을 좋아하는 나에게 너무나도 맞춤한 선택이었다.
그런 우리의 선택이 꼬맹이에게도 좋을 것인가..
아무래도 "만사오케이!"를 모토로 사는 듯 한 우리 꼬맹이는 역시나 빠르게 적응해 냈다.
"엄마, 유치원에 걸어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아!"
그리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간 차를 타고 등 하원하던 꼬맹이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쭐레쭐레 걷는 그 등원길을 참 좋아한다.
네모난 아파트에서 네모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네모난 1층 공동현관을 나오면, 나오자마자 풋풋한 풀냄새가 난다.
"흐음~구름아 안녕, 바람아 안녕... 나무야 안녕!
보리수야 안녕, 개미야 안녀엉 새야 안녕?!"
인사성이 이렇게나 바른 아이다.
노래인지 시인지 말인지 인사인지 모를 것들을 마구 내어놓는 아이의 표정은 뭐.. 이미 다 가졌다.
걷는 건지 춤을 추는 건지 발이 땅에 닿아 있는 건지 부웅 떠 있는 건지... 반 발쯤 앞서 걷는 꼬맹이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어어!! 엄마 엄마!! 꼬리 이쁜 새!! 저어기!"
비둘기랑 까치만 주구장창 보다가 처음 보게 된 이쁜 새들에게도 관심이 충만하다. '새=비둘기'라고만 생각하고 도망 다니던 나도 이곳에서 만나는 날개 달린 친구들은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꼬리 이쁜 새'
'숲에 사는 새'
'딸꾹질 새'
그들의 진짜 이름이 무언 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자꾸 딸꾹질하는 것처럼 지저귀는 새는 꼬맹이에게 그저 딸꾹질 새다. 미안.
코 앞의 유치원이지만 등원길은 결코 짧지 않다.
개미도 보고 새도 보고 나무도 보고 보리수도 따고 앵두도 따야 해서.
오늘도 한참을 산책하다 커다랗고 통통한 보리수 하나를 작은 주먹에 슬쩍 쥐고 간다.
"박선영 선생님 선물로 드릴 거야."
"크크, 그으래"
그렇다. 오늘도 지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