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시 끝나고 절대 하면 안 되는 일

NO SALE

by 글짓는써니

'책, 덴티폼 팝니다'

치과위생사 국가고시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주르륵 올라오는 글들이다.




치과위생사의 국가고시 과목은 모두 21과목이다.

그 많은 전공책들을 3년 혹은 4년 동안 주야장천 배우고 시험 준비까지 하며 지겹게 들여다본 터라 시험이 끝난 순간 드디어 모든 게 끝난 마냥 해방감을 느끼고 전공책이라면 진절머리가 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국가고시를 마치고 나면 다 끝난 것이 아니라 그제야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것이다.




나는 가지고 있지 않는 전공책들이 꽤 있다.

2학년 말 즈음 본가의 이사 때 이상하게도 내 책이 들었던 이삿짐 상자 하나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전공책이 비싸기도 비쌌지만 내 손으로 끼적인 온갖 필기가 되어 있는 책의 분실은 두고두고 큰 흠이 되었다. 국시를 앞둔 시기인지라 주요 전공책들은 급히 제본을 해서 보기는 했지만 알다시피 제본 책은 태생이 남의 책인 탓인지 들여다보기에도 오래 소장하기에도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시만 끝나면 이제 안 봐도 되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정말이지 꿈도 야무졌다.

졸업을 하고 임상에 발을 디딘 후 모든 게 새로웠다. 사실 다 배운 내용, 끼적이고 필기한 내용, 게다가 불과 얼마 전까지 시험 준비로 달달달 외운 것들이지만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고 아는 것 따로, 보는 것 따로인 상태였다. 모두 다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고 많은 임상 책들이나 매뉴얼들은 다가가기 어렵고 어색했다.


그때 다시 찾게 된 것이 교과서였다. 각 과별 전공책. 보철 과일 때는 보철학 책, 교정과는 교정학 책, 치주과는 치주학 책. 머리 아프게 찾고 고를 필요도 없이 그저 이름만으로 정체성이 확실한 전공책들이 있었던 것이다.


예전 어느 수능 만점자가 고득점의 비결이 무어냐는 질문에 교과서 중심으로 국영수를 공부했더니 만점이 나왔다는 대답을 했었던가?! 믿을 수도 없고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드디어 와 닿는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우리의 교과서, 전공책에는 무엇이든 다 나와있었다. 애매한 표현도 없이 정답과 이론만 기록되어 있는 아주 심플하고도 확실한 책. 거기에 끼적여 놓은 당시에는 뭔지도 모르고 로봇처럼 베껴 써놓았던 활자들은 이제야 주인에게 제 뜻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 활자들의 정체성이 확실해지는 순간에는 왜인지 모를 희열까지 느껴졌다. 한참 임상에 치이고 지칠 때 전공책을 들여다봐라. 학교에서는 도무지 읽히지 않았던 부분도 술술 읽히며 머릿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끼게 될는지도 모른다.


전공책이 촌스럽고 올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빠르게 발전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 기본을 아주 고지식하고 올드하게 써놓은 것이 바로 전공책이다.


임상에서의 어려움, 낯섦에 봉착했을 때 들춰보면 거기에 모든 정답이 다 들어있다. 군더더기도 없다. 헷갈리게 하는 것도 없다. 임상과 교재는 다르다는 반론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임상의 바탕은 교재고, 매뉴얼이다. 어느 정도의 응용은 가능하지만 한참을 벗어난 임상을 하고 있다면 잠시 내가 하는 일을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치과위생사로 사는 동안에는 나와 계속 함께여야 하는 것.

그게 전공책이다.



서비스 옵션으로, 한참이 지난 후 들춰본 전공책 사이에서 찾게 된 연애편지나 쪽지, 낙서들은 풋풋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잠시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치과위생사의 덕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