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12.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
대입에 첫 실패를 맛 본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부모님께 죄송했고, 억울했습니다. 열심히 했고, 많은 사람들보다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 말고는 없더군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멋있는 척 하지만, 사실 정말 찌질하게 많이 울었습니다.
재수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전액장학금이었습니다. 한 달 정도를 다녀봤습니다. 나가기로 하고 혼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학원의 일정을 따르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 보내주겠다는 그런 장담들을 듣고 있자니, 그럼 나 는 뭔가 싶더라고요. 나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니... 싫었습니다. 답답했고요. 물론 운동하기도 불편한 일정이었고요. 그래서 저는 1년 동안 순전히 모든 일을 제가 주도해서 하였고, 결과가 어떻든 책임을 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만, 학원에 다녔더라도 무서웠던 것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다를 점은 그 책임을 학원에 전가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입니다. 혼자 책임과 부담을 안고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친구를 만난 횟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며 도움을 받은 분들을 떠올리자면, 인터넷 강의 선생님들입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류는 거의 없이 최대한 독립적으로 실시했습니다. 생활 패턴 또한 제가 정했습니다. 아침에 도서관에 들어가 공부를 한 뒤,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마무리 공부를 했습니다.
자유로웠습니다.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만, 자유로웠습니다. 이 시절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고독하게 꾸준하게 공부하면서 얻은 성적이 아닙니다. 주체성이었습니다. 주체적으로 제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의존할 누군가도, 탓할 누군가도 없었습니다.
사르트르를 좀 빌려오고 싶습니다. 제가 선택을 함으로써 제가 완성됩니다. 인간이 사물과 다른 이유입니다. 사물을 먼저 살펴봅시다. 사물은 본질이 실존에 앞섭니다. 예를 들어, 의자가 있다고 합시다. 의자의 본질, 용도는 만들어지기 전부터 정해져있습니다. 앉을 수 있는 그 무언가 입니다. 목수는 의자를 실제로 만들기 전부터 사람이 걸터앉을 때 쓰는 기구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만듭니다. 어떤 재료를 쓸지, 높이나 길이는 어떻게 할지, 각도는 어떻게 할지 등 다 결정한 뒤에 만듭니다. 쉽게 말해 결정되어지고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무언가 입니다.
반면,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렇게 살기로 정해진 인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지 결정해가며 만들어집니다.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이렇듯 스스로 결정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결정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죠. 나를 만드는 것도 나입니다. 게임 캐릭터는 그렇게 소중히 키우면서, 정작 본인은 왜 안 키웁니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
“당신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마라. 지금까지 당신이 만들어온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당신이 있는 것이다.”
-바바라 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