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달은 보통 일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죽이기> 홍보 글입니다.

by 뉴욕타임스 살리기

원고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 법원은 소장이 형식에 맞는지를 심사한 후, 소장이 형식에 맞으면, 피고에게 소장의 부본(원본과 내용이 동일한 문서)을 송달한다. 피고는 소장의 부본을 송달받고 나서,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송달은 문서가 전달되는 사건일 뿐이지만, 송달이 이루어지면 법적으로 중요한 효과가 발생한다. 실질적으로는 피고에게 소장 부본의 송달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소송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송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원고와 법원 뿐만 아니라 피고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피고 측에서 소장의 제출 사실과 소장의 내용을 어떻게 미리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공식적인 송달일자는 그와 별개로 정해진다. 예를 들어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송달받은 문서 파일을 열어 본 시점에 공식적인 송달일자가 되는 식이다.


그래서 소송을 하다 보면 전략적으로 송달일자를 늦추기도 한다. 일부러 송달받는 시기를 늦추어 대비에 필요한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송달일자를 늦추는 수준을 넘어서 기한을 넘겨 송달을 회피하게 된다면 법원은 공시송달을 하는데, 쉽게 말해 법원 게시판에 게시해 모두가 볼 수 있게 한 다음에 피고에게 송달이 이루어진 것으로 치는 셈이다.


민사소송에서 피고가 답변서를 30일 안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도, 원고가 소장을 제출한 시기가 시작점이 아니라, 원고가 제출한 소장의 부본이 피고에게 송달된 시점이 시작점이다.


미국의 민사소송에서도 송달은 아주 중요하다. (송달을 영어로 'service'라고 한다)


신간 <뉴욕타임스 죽이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980420


흑인들의 민권 운동, 인종 통합 운동이 한창이었던 60년대 미국. 미국 남부의 공직자들의 뉴욕타임스를 향한 적대감은 최고조였다. 뉴욕에 소재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북부의 양키 언론들이 저 머나먼 남부의 인종분리와 인종차별에 대한 폭로의 보도를 이어가니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미국 남부 주의 공직자들은 뉴욕타임스, CBS를 비롯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높은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을 연이어 제기한다.


뉴욕타임스 법무팀은 이러한 상황에서 남부 주에 파견한 취재 기자들을 전부 철수시키고, 남부 주에 아예 출입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내 정책을 수립한다. 왜인가? 송달 때문이다. 송달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소송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부 주에 뉴욕타임스의 기자, 특파원, 심지어 직원 1명이라도 있다가는, 남부의 송달관이 찾아와 소장을 송달해 버릴 수 있고, 뉴욕타임스가 거액의 소송에 휘말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거리는 약 1650km에 달한다. 자동차로 15시간 거리다. 참고로 신의주에서 부산까지의 직선거리가 700km다. 블라디보스톡과 부산의 거리가 1100km 정도라고 한다. 문화의 차이와 역사의 차이는 차치하고 지리적 거리만 놓고 보더라도, 뉴욕과 앨라배마는 미합중국이라는 같은 연방에 소속되어 있을 따름이지, 별개의 나라나 다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 소재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내려와서 앨라배마에 대해 취재하는 것은 말이 국내 보도이지 실질 국제 보도나 다름없지 않은가. 앨라배마 주에 뉴욕타임스 기자가 1~2명이 상주하면서 현지 심부름꿈들의 도움을 받으며 취재를 하고 본사에 송고를 하면 그것이 앨라배마 취재의 전부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이 소장 부본의 송달이 두려워 철수하게 되면? 앨라배마라는 주 하나가 뉴욕의 엘리트 독자들-다름 아닌 미국 정재계의 의사결정자들-의 초점 밖으로 밀려나 사라지고,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론이 겪을 수 있는 위축 효과라는 것이다. 송달이 이렇게나 엄청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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