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나홀로 소송은 가능할까?

by 뉴욕타임스 살리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AI에만 의존해 나홀로 소송(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고 하는 소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불가능하다는 말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헌법재판처럼 변호사 강제주의를 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웬만한 소송절차는 개인이 소송대리인 없이 수행할 수 있다. 다만 AI만 믿고 나홀로 소송을 했을 때 승소가능성이 매우 낮고 낭패보기 쉽다는 정도의 의미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섭다는 것을 체감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Gemini 3.0 Pro를 사용해 보니, 심지어 유료판이 아니라 무료판을 사용해도, 이 정도로도 웬만한 변호사보다 나은 지식을 제공한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유경험자가 아닌 변호사와 비변호사 일반인의 차이는 정보의 양과 질을 기준으로 보면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다. 불성실한 변호사보다는, 성실성이 있는 비변호사 일반인이 AI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는 경우 훨씬 더 나은 소송 수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 환각 현상 등의 문제가 지적되지만, 변호사도 불성실해 사실확인을 게을리 하면 환각에 속아 넘어가고(실제로 보고되는 사례도 많다), 일반인이라도 성실하게 더블 체크, 크로스 체크를 하면 환각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성실하다는 것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경우를 가정하며 조사에 조사, 점검에 점검을 거듭하고, 반대 정보를 찾아가며 작업을 한다는 의미다.


다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생각은, 반드시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나홀로-나홀로 소송"(이 때 나홀로 소송의 의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AI의 도움만 받고 혼자 하는 소송)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언자는 있어야 하고, 가급적 해당 분야에 경험이 있는 현명한 조언자가 있어야 한다. 해당 분야에 경험이 있는 조언자들로부터 내게는 없는 경험, 관점, 직관, 그리고 그의 시간을 계속해서 빌려야 한다.


AI는 환각도 심각하지만, 편향도 심각하다. 사용자의 니즈를 기막히게 읽어내고 사용자가 듣고 싶은 소리를 골라서 해 준다. 사용자의 편향이 그대로 AI의 산출물에 전이될 뿐 아니라, 더욱 증폭된다. 이러한 편향을 교정해 줄 수 있는 것은 객관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외부의 조언자다. 실질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조언자를 하나도 두지 않은채, 자신의 공명판에 불과한 AI의 도움만 받아서 소송을 수행한다는 것은 여전히 자살행위다. 이 점에서 AI 시대에도 나홀로 소송이 아닌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하는 것은 아직까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변호사를 사서 선임하지 않더라도 부분적, 일회적으로라도 대가를 주고 조언을 듣는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장안의 화제" <뉴욕타임스 죽이기>를 읽어 보면, 뉴욕타임스가 설리번 사건에서 앨라배마 주 법원의 패소 판결을 받은 이후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로스쿨 교수이기도 한 변호사 허버트 웩슬러의 조력을 받기로 하는 대목이 나온다. 기존의 명예훼손법의 법리를 단순 적용한다면 뉴욕타임스가 패소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급심에서 변호사들은 특정성의 항변(문제의 광고 내용은 원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이나 관할의 항변(이 재판은 앨라배마가 아니라 뉴욕에서 해야 합니다) 등으로 버텨왔으나 모두 기각당한 상황이었다. 헌법 전문가 허버트 웩슬러는 -정확히는 그의 조수는- 미국 건국 초기에 제정되었다가 폐지되었던 선동법의 사례를 언급하며 수정헌법 제1조의 범위 문제로 쟁점 자체를 전환하는 전략을 택한다. 웩슬러의 팀이 오랜 시간 미국 헌법의 변화를 연구해 왔고, 연방대법관과 연방대법원의 연구관들의 트렌드를 따라 왔던 팀이었기에, 창의적인 쟁점 발굴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창의적 쟁점 발굴을, 비변호사 일반인이 AI의 조력을 받아 보아야 결코 할 수 없다는 단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AI 뿐만 아니라 현명한 조언자의 조력까지 포함해 최대한 많은 행위자들(인간과 기계 불문)의 조력을 받아야 더욱 신속하고 더욱 예리하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건일 수록, 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더 받아야 하고, 한 명의 행위자의 도움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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