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죽이기> 홍보 글을 겸합니다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에서 관할이란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어느 법원 어느 재판부에 재판권한이 있는지를 정하는 문제로 실무상으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다.
동일한 사건이 이 재판부의 관할이 될 수도 있고 저 재판부의 관할이 될 수도 있으며, 관할이 어디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당사자나 대리인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달라지고, 어떤 성향을 가진 어떤 재판관이 재판을 하느냐 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관할이 정해지고 관할이 다르게 정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실무에서 관할 변경 신청을 할 수도 있고, 관할에 대한 이의제기의 항변도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법률전문가의 검토와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
미국과 같은 대국의 경우에는 관할 문제가 더욱 큰 스케일로 발생한다. <뉴욕타임스 죽이기>의 소재인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의 경우, 원고 설리번은 앨라배마 주민이었고, 피고 뉴욕타임스는 뉴욕에 소재한 법인이었다. 뉴욕타임스의 행위(원고 설리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문제의 광고 게재)는 뉴욕에서 발생한 사건, 뉴욕에서 실행된 행위였지만, 설리번의 변호사들의 주장에 의하면 뉴욕타임스가 문제의 광고를 게재한 신문을 앨라배마에서도 판매하였으므로(판매부수는 매우 적지만), 뉴욕타임스는 앨라배마에서도 사업을 한 것이고, 따라서 앨라배마 주 법원과도 최소한의 관련성이 인정되어, 앨라배마 주 법원도 이 사건에 대하여 관할을 갖는다고 인정되었다. 뉴욕타임스의 변호사들은 앨라배마 주 법원에는 관할이 없다고 항변했고, 설리번의 변호사들은 앨라배마 주 법원에 관할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앨라배마 주 법원의 존스 판사는 앨라배마 주 법원에 관할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급심 단계에서는 바로 이 관할 쟁점이야말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였다. 앨라배마 주 법원의 관할이 부정된다면, 재판은 뉴욕타임스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재판관들과 배심원단이 있는 미국 북동부에서 진행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앨라배마 주 법원의 관할이 인정되었기에, 재판은 뉴욕타임스에 적대적이고 인종분리주의적인 재판관과 배심원단이 있는 미국 최남부 앨라배마 주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뉴욕타임스 죽이기> 참조).
관할 문제는 위의 사건처럼 민감한 사안에서는 사건의 승패 자체를 가르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관할이 어디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소송 수행의 편리함이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다. 당사자나 변호사의 주요 활동 지역에서 먼 곳의 법원 재판부에 관할이 정해진다면, 당사자나 변호사가 몇 시간 씩 출장을 가서 출석을 해야 하고, 직접 재판에 출석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한다.
재판의 당사자가 된다면 관할 쟁점에 관해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만약 내가 소송의 피고가 되어, 원고가 이런 저런 이유에서 특정 법원에 관할이 있다고 주장하며 제출한 소장을 전달받게 되더라도, 그 법원에 관할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소송을 할지, 관할의 변경을 신청하거나 주장할 수는 없을지 등에 대해서 한번쯤은 꼼꼼히 살펴 보아야 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소송의 원고가 되기로 한다면, 어느 법원 어느 재판부에 관할이 있다고 주장하며 소장과 신청서를 제출할지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는 믿고 사건을 맡길 수 있는 변호사가 위치한 지역에서 가까운 법원의 재판부에 관할이 있다고 인정될 수록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