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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퍼도 꾸준히 May 08. 2020

중고거래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

어쩌면 애써 비운 집이 다시 넘치게 될지도.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한다고 결심하는 것과

나의 물욕이 잠드는 것은 꽤나 거리가 먼 일이다.


내 물욕은 소심해서

명품을 탐하지는 않으나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라고 나를 다그친다.


어느 날은 옷을,

어느 날은 책을,

또 어느 날은 잘하지도 않는 요리 도구를

꼭 필요한 것으로 둔갑시킨다.


게다가 왜 꼭 물건을 구매할 때는

세트로 구색을 갖추고 싶은 건지,


기계를 잘 모르는 안드로이드 유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핑계로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덥석 구입하고


하루라도 젊을 때 피부가 더 좋아야 한다며

칙칙한 얼굴을 밝힌다는 핑계로

LG 프라엘 세트를 질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새 물건에 대한 잠시 잠깐의 기쁨이 사그라들면

또 다른 품목에 대한 욕망이 고개를 처들고

몇 날 며칠을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게 만들며

집안에 택배상자를 들이고야 마는 것이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로 결심한 뒤,

물건을 산다는 것이 환경을 엄청나게 병들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뒤,

내 물욕은 자연스레 잠들었을까?

슬프게도 내 욕망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갖고싶고 필요한것만 같은 물건들은 계속 생겨났다.


다행히 세상에는 중고거래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어느 고마우신 분이 친절히도 앱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물건을 쉽게 거래할 수 있었다.


중고거래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일단, 원하는 제품을 싼 값에 살 수 있다.

선뜻 살 수 없는, 하지만 써보고 싶은 물건들을

반값에 얻을 수 있다.


거기다 너무나 친환경적이다.

일단 중고이기에 포장이 없다.

물건을 공장에서 새로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배송은 또 어떠한가?

내 손으로 직접 물건을 받아오니 택배로 인한 산더미 같은 쓰레기 역시 없다.

제로웨이스트의 기준을 맞추면서

내 물욕을 잠재우기에 이만한 것이 또 있으랴.


첫 중고거래로 블루투스 스피커를 장만한 이래로

나는 중고거래 앱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중고거래 앱은 새로 만난 백화점이요, 아울렛이요, 쿠팡이었다.


언제, 어떤 상품이 어떤 가격에 올라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은

나를 더 중고거래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찾아오는 인터넷 사용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 낭비라는 불편한 진실도

오랜만에 해갈된 소유욕을 잠재우지 못했다.


하트를 눌러 찜해둔 물건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아이패드를 위한 블루투스 키보드,

맛 좋은 드립 커피를 위한 드립퍼와 그라인더,

손수 만들 멋들어진 요리를 위한 오븐아기자기한 그릇들,

운이 좋다면 내년부터 함께할 아이를 위한 유모차와 자석칠판, 미니책상까지.


매일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을 찜했다.

지금 거래를 하지 않으면

누가 언제 나를 제치고 사갈지,

이런 물건이 언제 다시 올라올지 모른다는

조급함이 앞섰다.


그러던 어느 저녁,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에서 매진 임박을 외치는 쇼호스트의 목소리를 들었다.


뜨끔했다.

중고거래를 하면서 나는

내 마음속에서 쇼호스트가 되어

매진임박을 열렬히 외치고 있었다.


새 상품을 사지 않는다는 핑계로

집안에 또 한 무더기 물건을 들일뻔했다.

애써 비운 12 상자 분량의 옷과 책만큼의 공간을

없어도 되는 중고물품들로 채울뻔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중고거래에 대한 흥분을 가라앉힌 상태이다.

가라앉혔다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잘 보아왔기 때문이다.


현재 찜한 상품은

음악 스트리밍보다는 중고 CD를 듣는 게 더 친환경적일 거라는 생각에 담아둔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CD들뿐이다.


다만,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전부 중고 CD로 구하기에는

금세 CD를 이고사는 집을 만들 것만 같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어쩌면 CD를 대신해 USB에 음악을 다운로드하는 방법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중고거래는

환경적으로나

제로웨이스트로의 지향으로나

내 성마른 물욕으로나

참으로 매력적인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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