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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율 Oct 25. 2022

암환자도 사람이야 ​

엄마니까 모든걸 이겨낼 수 있는건 아니다.

첫 아이를 낳고나서 나는 친정엄마와 육아갈등을 겪었다.

물론, 결혼하기전에도 나는 그 "장녀"란게 뭔지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해서 내가 버는 월급 그대로 엄마에게 상납했다.

내가 번 월급은 생활비로도 쓰이고 그때 아버지가 화물차를 사셨는데

그 차의 할부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엄마에게 맡기는게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내 결혼자금도

함께 모으고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결혼이 결정된 시점에 엄마는 한푼도

내게 줄 수 없다고 했다.

기가막혔다.

싸우는 수 밖에..다른 길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엄마는 이제 엄마가 됐으니

모든걸 자식을 위해 참고 견디면서 살라고 했다.

첫아이는 예민해서 혼자 그냥 잠드는 법이 없어, 늘 몇시간씩 안든지

업든지 해야했다. 허리고 손목이고, 안아픈데가 없이 아팠지만,

내 자식이니 어쨌든 내가 케어해야했다.


그럼 남편은?

그때쯤 매우 바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자정무렵에야 퇴근을하니,

아이도 아빠라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인지 아빠에겐 가지않으려했다.

그리고 새벽마다 울어대니, 남편은 자다말고 나와서

"애 좀 안울게 할 수 없어?"

라며 내게 짜증을 냈다.

"울게 할 수 있는 방법? 그게 뭔데? 있으면 좀 가르쳐줄래?"

하루종일 독박육아에 지친내가 남편에게 곱게 말이 나갈리 없었다.

"니가 하는게 뭔데?고작 돈 몇푼 벌어다주는 걸로 니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거야?애 한번 봐준적 있어?니가 하는게 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후에 크게 한번 싸웠다.

더이상 함께 살지 말아야하나?생각해볼 만큼.


그리고 나의 엄마는 내가 아프거나, 또는 남편이랑 살기 싫다고 말할때면

그래도 애들 생각해서 나더러 참으라고 한다.


암수술을 하고 와서도, 나한테 "엄마니까,,아직까진 애들 대학가고 결혼할때까진

옆에 있어야하지 않겠니?"라고 한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의문이지만, 무턱대고 살아있으라니, 화가난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라고..


수술부작용은 나만 알수 있을만큼 매우 얍삽하게 몸이 아프다.

나는 아프고 불편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너무 멀쩡해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프고, 나도 힘들다.

엄마라고 자식을 위해 희생만을 강요하던 시절은 지났다고 본다.

그럼에도 내 아이들에겐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필요하다는걸 안다.

그래서 애쓴다. 건강하게 살아남아있기위해서.


나의 엄마는 자식을 위해 모든걸 포기하고 사셨나?

어찌보면 그럴수도 있지만, 또 어찌보면 아니다.

한번은 우리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셨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그런 일들은 굳이 생각하고 살지 않는데..문득 엄마는 그랬었지..라는 생각이

들면 자식을 포기하고 버린 엄마라고 생각하니 미워질때도 있다.


당신은 그렇게 포기하고 갔으면서..

나에겐 엄마를 강요하고 있으니, 이 무슨 조화속인가 싶다.


암환자가 되고 나서 나는..한가지 목표는 생기긴 했다.

그냥..아이들이 더 클때까지만, 옆에 있어주기..

잘 될지 모르겠다.

잘 될거라고 생각해야지..다른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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