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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율 Nov 07. 2023

암환자에 대한 엄마의 분노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올해로 아버지의 나이는 74세가 되셨다. 3년 전에 위암 4기를 진단받고 위 전체를 절제하고 소장과 식도를 잇는 큰 수술을 하셨다.

지금도 썩은 나무줄기처럼 얼굴에 생기란 없고 살가죽이 뼈와 붙어버린 듯 말라버린 몸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신다.

위암 수술은 역시 음식의 제한이 많다, 일단 과일 중에 감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되고 떡 종류도 먹으면 안 된다, 소화도 안될뿐더러 장폐색이라도 오면 매우 응급한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버진 진단을 받기 전에도 늘 먹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분 같았다. 살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 늘 체중을 유지하려 애쓰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잘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2~3kg씩 빠지곤 했었는데 그게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의 식탐은 여전히 건재했다. 엄마 몰래 짜장라면을 먹기도 하고, 국수를 먹기도 하고, 정량보다 많은 밥을 먹은 날 저녁은 늘 배가 아프고 토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큰 탈은 나지 않은 채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고 계신다. 곧 정기검진인데 담당의사는 완치판정을 해도 되겠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면.


아버지가 수술을 했으니 몸에 있는 암도 없어졌고, 난 예전처럼 일도 하러 다닐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 엄마는

"저 인간이 저렇게 모르는 소리 한다. 암이란 게 수술했다고 다 없어진 게 아니라고!"시며 소리를 치신다.아버진 청력도 좋지 않으셔서 크게 말하지 않으면 잘 듣지도 못하신다.

저 인간이라는 호칭에 대한 이야기는 사연이 길다.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다.

아무튼 아버진 수술로 모든 게 끝난 걸로 알고 계시지만, 엄마의 말이 사실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암진단을 받은 다음 해에 나도 역시 다른 암을 진단받았다.

가끔 아버지를 향해 암환자에 대한, 암에 대한 소름 끼치도록 듣기 싫은 말들을 엄마가 쏟아놓을 때가 있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분노인 줄은 알겠으나, 그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서 듣기가 매우 거북하다.

거북하다기보단.. 상처가 된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암환자의 피에는 계속 암세포가 돌아다니고 있어서, 평생 먹는 거 관리해야 된다. 수술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엄마말이 맞다. 그럼에도 나는 야식으로 라면을 먹기도 하고 하루에 커피를 2잔 이상 마시기도 하고 과자를 욱여넣기도 한다. 엄마의 말에 반박하고 싶진 않다.

그냥 아빠한테 쏟아놓는 그 말들이 딸인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가는 중이니 제발 말 좀 가려서 하시라 말하고 싶다가도.. 아니.. 안 보면 그만이지.. 싶은 생각도 든다.


가족이니 상처가 되는 말들을 고스란히 맞으며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며 산 시간이 나에겐 모두 스트레스였고 병에 걸리게 한 기여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족과의 손절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자식인데 그럴 수 있냐? 부모면서 그럴 수 있냐?는 사람들의 각자의 도덕적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잣대일 뿐 그 상처 속의 시간에 오롯이 살아보지 않았으면 모른다. 살아보지 않았으면 적어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손절이 어렵다면 서서히 멀어지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인생이 생각보다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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