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간다

나는 환자니까

by 유진율


저녁에 나가는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시간은 좋았지만 받는 돈에 비해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나를 고용한 점주의 속내가 다 보일 지경이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내려온 박스에 든 물건들 창고에 넣고 온라인 주문 건 택배 포장하고 매장 정리하고 쓸고 닦고.. 그러고 나면 오픈시간이었다.


함께 도와주겠다던 직원아이는 (나보다 한참 어린 30대 중반) 매일 저녁 혼술을 즐긴다면서 늘 오픈 20~30분 전에 도착해선 그냥 매장을 빈둥빈둥거리며 돌아다니기만 했다.

물론 나름 매장에 필요한 업무도 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일은 아니고 조금은 귀찮은 업무정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든 나는 퇴근 후 집에 와서도 화장도 못 지우고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 분리수거. 청소기 돌리는 루틴으로 퇴근 후 한 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야 겨우 힘들다고 혼잣말로 짜증을 부릴 수 있었다.


하루는 매장에 서있는데 배가 쥐어짜는 듯이 아파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또 한 번은 머리가 울리면서 어지러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중간에 조퇴하는 게 너무 눈치 보여서 말도 못 하고.

백화점 애들이 남한테 피해를 받는걸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내가 안 나오면 그 일을 오롯이 혼자 떠안아야 하는 걸 아주 큰 피해를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두 번쯤 배려하고 양해해 줄 수도 있으련만 여기 사람들에겐 배려와 양해라는 단어는 잊어버린 듯했다.


'그게 뭔가요? 먹는 거예요?'


그래서 아파도 참고 꾸역꾸역 퇴근시간까지 버티곤 했다.


내가 암환자라는 걸 밝히지 않았으니 늘 골골대는 것 같은 나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관심도 없겠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병원예약은 오전이지만 12시가 다 되어서 겨우 일으킨 몸뚱이로 씻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잊고 살고 싶지만 매달 가는 병원, 주기적으로 하는 초음파검사, 혈액검사.. 그런 것들이 나를 각성하게 한다.

건강하지 못하니 더 건강하게 먹어야겠다.. 다짐하지만 어느 날은 피자가 너무 먹고 싶고 어느 날은 콜라도 생각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이 또한 나의 건강하지 못함이 만들어낸 시기심이다.


그들에게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건지.. 나도 모른다.

다만 피상적인 그들의 모습에서 지나간 나의 모습들이 투영되어 조금 슬프다.


매일같이 늘어가는 짜증으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만두니 맘이 편하다.


그럼에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 기웃거리는 나.. 아픈 거보다 돈이 더 무섭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암환자에 대한 엄마의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