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무스탕

by 유진율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깜깜한 어둠 속에 계속 갇혀 있다가 다시 한줄기 빛이 비쳤다가 이내 사라진 것 같은 순간이 전부였던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온갖 무시와 시련과 고통을 참아내는 존재이기에 나는 적어도 그런 면에서만이라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이란 건 무엇인지 늘 돈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성을 지르며 싸움을 해댔고, 나는 이불속에서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스무 살쯤이 됐을 때, 아버지가 작은 사업을 시작해서 큰돈을 번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만큼은 정말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문제집 하나 사는 것도 몇 날 며칠을 졸라야 겨우 얻을 수 있었고, 학교에서 전과(요즘으로 치면 교과서의 내용이 모두 실린 설명서)도 사지 못해서 친구에게 며칠만 빌려서 겨우 학교 숙제를 해가곤 했다.

집에 돈이 없고, 나에게 쓸 돈이 란 건 더더욱 없었지만, 엄마는 아들에게만큼은 너그러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남동생이 달갑지 않다. 아직도 여전히 엄마는 나이가 들었지만, 아들이 제일 잘 살아야 하고 아들이 아프면 안 되고, 아들이 아무쪼록 무탈하게 잘 살기를 늘 바라시는 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프면 나한테 병원같이 가자. 영양제를 구해달라, 어디가 아픈데 어느 병원을 가야 하나? 그럴 땐 꼭 내 차지다.

아무튼, 아들에겐 그 비싼 나이키 점퍼를 사주었는데 이유는 아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기죽으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난 고등학교 내내 이웃집 언니가 물려준 낡아빠진 솜도 다 죽어버린 점퍼만 입고, 동상에 걸렸었는데.. 그런 순간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냥 불효년이 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아프고 병든 엄마를 보면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돈이 많이 모일 때쯤 나는 이제 돈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고 싶은걸 눈치 보며 조르지 않아도 되고 밥상에는 늘 고기반찬이 올라오고, 부모님은 더 이상 싸우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내가 그 나이에 명품을 사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이랑 밥 먹고, 놀고, 책사고, 공부하는데 아무 걱정도 들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어느 겨울이었던가.. 엄마가 무스탕코트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땐 그다지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이 가자고 해서 매장에 따라갔는데, 엄마는 현금 뭉치를 꺼내서 맘에 드는 무스탕을 샀다.

대략 백만원정도 되었던 것 같다. 엄마는 웃으며 결국 그 무스탕코트를 입게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나는 그때 뭔가가 치밀어 올라서 매장에서 화를 냈다. 그 돈 백만 원이면 내가 그렇게 입고 싶어 했던 코트 10장은 사고도 남겠네.. 자기 옷 살 땐 아깝지 않으면서 자식이 그 차가운 겨울에 낡아빠진 외투를 입고 다니는데, 그런 나는 보이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화가 났던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맥락 없이 화를 내니 엄마도 당황했고, 같이 간 여동생도

-언니 왜 그래? 엄마가 평생 사고 싶었던 거 사지도 못해?


하고 말했지만, 동상 걸린 발로 3년 내내 낡아빠진 내 외투를 본체만체했던 엄마모습이 떠올라서 너무 화가 났었다.

그냥 다 지나간 일이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지금에도 여전히 나는 그때가 너무 사무치게 아프다.


돈이 란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고.. 나에게 돈은 있어도 없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 행복했던 단 몇 년의 순간이 결국 돈이 있어서 여유로웠고, 돈이 있어서 평화로웠다는 걸 안다.

돈은 마음의 여유를 찾아주는 유일한 마음의 출구이다. 답답한 마음의 출구.


엄마는 그 무스탕 코트를 아낀 건지.. 40여 년 내내 옷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생각엔 몇 번 입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 고등학교 졸업식 때 입었었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째서인지 엄마는 이제 가볍게 살고 싶다고 하면서 본인 옷도 다 정리를 하셨다.

그중에 그 무스탕은 중고로 동생이 팔아주었는데 3만 원에 팔렸다고 했다.

지금 보기엔 디자인이 좀 촌스러울 뿐. 입을 만은 했는데

그렇게 그 무스탕이 엄마의 옷장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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