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싫은데 무말랭이는 생각나네

by 유진율

결혼 초 나와 남편은 맞벌이였다. 하지만 내가 너무 드라마속에나 나오는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것인지 아니면 결혼에 대한 이상적인 장면들만 수집한것인지, 맞벌이를 해도 내가 더 일찍 퇴근하니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저녁이면 퇴근한 남편을 기쁜 마음으로 마중을 나가곤 했다.

신혼집은 주택이었는데 거실이라고 볼 것도 없는 부엌이 딸린 공간이고 방은 두칸이었다.

내 생각엔 열평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일하고 와서 앞치마 두르고 요리를 하는 그 순간도 행복했다. 그냥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순간들이 가끔은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감은 3개월도 가지 않았다.

매일같이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전화, 전화를 건 목적은 당신의 아들과 내가 함께 행복한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아들 밥은 뭘 차려줬니?", "오늘 반찬은 뭐 해먹였니?","오늘 우리아들 생일인데 미역국은 끓여줬니?" "너 반찬 만들줄 아니?"

이런 질문들이었다. 내가 멍청한 것인지 시어머니가 생각이 없으신거였는지, 나는 그땐 결혼한 사람들은 그렇게 시어머니와 자주 통화를 하고, 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하고 사는 줄 알았었다.

그게 아니라는걸 깨닫게 된게, 아이를 낳고 3년 쯤 지나면서, 동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부당한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 즈음부터 남편과 많이 다투게 되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던 시부모님은 물론, 전적으로 시어머니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김치며, 반찬, 하다못해 파,양파조차 택배로 집앞에 놓여있었다. 언제 보낸다는 말도 없이 보내고 나서 택배의 안부를 물어보곤 했다.

야근이 많아진 어느날에도 저녁무렵 쌀이 택배로 왔다. 너무 피곤해서 다음날 잘 받았다고 전화해야지.생각 한 다음날, 다짜고짜 전화해서는 "넌 택배를 받고도 잘 받았다는 인사도 안하냐?버르장머리없이"라고 언성을 높이며 나를 꾸짖기도 했다.

전화할려고 했는데 늦어서 안그래도 오늘 할 생각이었다고 하니, 그래도 바로 전화를 해야하는거라고 하면서 전화를 냉큼 끊어버렸다.

그런날에도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니가 잘못했네,왜 받자마자 전화를 안했어?"라고 나를 책망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한두개가 아니라서 처음엔 정말 내가 잘못했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남동생을 보니 올케를 너무 감싸고 돌고, 뭐라고 말이라도 하면 엄마가 더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게 너무 단단하게 막아서는걸 보고, 내 남편은 남의편이구나! 생각했다.

물론, 남동생의 스탠스는 대단히 지나치긴 하다. 그래서 올케는 여전히 내게 남이다. 그 둘이 어떻게 살든 말든 내 알바가 아닌데, 가끔 남동생이 잘못한 일을 내게도 연대책임을 물어올때면 어안이 벙벙하다.

너를 그렇게 시댁이란 굴레에서 지켜주는대도 얼토당토 않는 "니 동생이잖아?"이런 말을 들으면.나더러 어쩌라고!


시어머니의 아들사랑이 유별나다보니. 20여년이 지난지금에서야 내 눈치를 본다. 그리고 나는 암환자가 된 이벤트로 인해 시어머니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의 근원을 없애버리고 싶어서 시댁에는 유령같은 존재가 되었다.

김장때마다 냉장고가 터져나갈듯 보내오는 김치도 이젠 없고, 쌀이며, 파도 양파도 오지 않는다.

철마다 아들 보신용으로 보내주던 것들도, 나와 함께가 아니라 '내 아들만' 먹어야 하는 것들이었기에 보내오지 않아도 딱히 서운하지는 않다.


근데 요 며칠전부터 시어머니가 만든 무말랭이 무침이 먹고 싶다. 말린 무말랭이를 제대로 불리지 않아서 딱딱한 무가 씹힐때면 성질부터 나지만, 뭔가 달고짠 그 무말랭이 무침이 문득 생각났다.

남편한테 부탁해서 만들어 달라고 하긴 내 입장이 난처하고, 그래서 인터넷으로 몇군데를 시켜봤는데 물론 같은 맛은 나지 않아서 매번 실망중이다.


음식이란 것은 그런 것 같다. 향수처럼 그 향기를 맡으면 그날의 공기와 바람과 온도가 모두 느껴지는 것처럼 누군가가 해준 음식을 떠올리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그 음식을 먹으면 그때의 다정했던 모습과 즐거웠던 기억이 상기되는 것처럼.

그다지 좋은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냥 맛있었다는 생각에 그 음식만 생각나는 이상한 모순.


싫은 사람임에도 음식엔 죄가 없지 않은가.


무말랭이무침 너는 죄가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긴 터널 속 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