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당근에 내가 사고싶은 물건이 등장했다.
가격은 단돈 오천원.
메이크업 쿠션인데 케이스 없이 리필만 샀더니 쓰기가 불편해서 케이스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내용물도 있는데 오천원이라길래 당장 직거래를 요청했다.
직거래 장소까지는 집에서 버스로 3정류장 정도의 거리지만, 질러가면 가까운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강을 끼고 있는 아파트여서 종종 나도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추워지면서부터는 나가는게 귀찮아졌다.
오늘은 오랫만에 봄바람같은 따뜻하고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었다.
아래쪽 산책로를 훑어보다보니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운동기구 있는 쪽을 내달리며 운동기구들이 신기했는지 허리운동기구의 발판을 손으로 돌려보며 신나해했다
그 아이 뒤로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아이를 제지하고 아이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있었다.
아이는 한참을 내달리다가도 뒤를 한번씩 돌아보며 엄마,아빠를 확인하는 듯 했다.
그리곤 곧장 달려와 엄마의 허벅다리에 매미처럼 매달리곤 했다.
내게도 저런 날들이 있었다. 오로지 아이의 뒤를 열심히 지키고 다치지 않게 넘어지면 다가가서 일으켜세우고 울면 안아올려 달래주고, 눈물을 닦아주던 그런 시간들이.
지금은 그저 아이들 곁을 지키고 먼 발치에서 응원하고, 가끔 힘들고, 가끔 아프고, 가끔 슬퍼할때 나는 그저 다가가 안아주고 다독이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이미 아이들이 다 컸다고 여기고 있지만, 사실은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잘 모르고 천진난만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참견하고 싶어지는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언제까지고 곁에 있어 줄 수 있다면 말이다.
생명은 유한하고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줄 수는 없으니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깨우쳐가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한 순간 순간의 장면들이 필름처럼 이어져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내 삶의 어느 한 장면의 일부 일 것이다.
봄바람같은 오늘의 바람이 내 아이의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한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어린시절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시큰둥했다.
학교에서 성적이 많이 올라서 담임선생님이 칭찬을 해도, 상을 받아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런 엄마의 태도에 질려버린 나임에도 내가 아이들에게 똑같이 엄마처럼 아무런 액션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때 나는 엄마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참 잘했네","고생했다","수고했다"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을 할 줄 몰랐다.
엄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했는데 엄마처럼 행동하는 나를 보며 그건 마치 내가 나에게 건 저주 같기도 했다.
가끔 아이가 반응 없는 나를 보며 볼멘소리를 할때면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 지 몰라서 코너에 몰린 어린 양처럼 어쩔 줄 몰라했다.
물론, 이런 사정을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가끔 학원에서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하러 나가면서 집으로 돌아올때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지금은 반응없는 엄마를 조금은 이해해주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말로는 못해도 카톡으로 매우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마음을 대신한다.
시험이 끝난 날에는 "수고했어" "고생했다"
상을 받아온 날에는 "니가 최고야" 같은 이모티콘으로.
그 이모티콘을 보며 깔깔웃는 이모티콘을 받을때면, 마음 한켠이 슬프게 차오른다.
내 뒤에 엄마 아빠가 나를 잘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보던 아이는 이제는 엄마 아빠의 뒤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주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이란, 내 아이가 대단한 뭔가를 이루어서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도 아닌..
그저 오늘 이 하루에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을.
나의 엄마도 그걸 빨리 알아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