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곰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다가오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채로 내가 사는 아파트
중문앞에 정지된 물체처럼 서 있었다.
곰이 눈앞에 있었지만 나는 무섭지 않았다.
다만. 이 곰을 우리집으로 들여서는 안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 집의 질서를 교란하고 있었다.
그것은 침입자가 아니라 이미 배치된 오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강하게 밀어내고 싶어졌다.
가족들과의 연말모임이 계획되어 있었다.
모임 장소에 나갔는데 올케의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닥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내심 무슨일이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차가운 바람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남동생은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사실을 이야기 했다.
와이프가 임신을 했지만, 아이를 만나지는 못 할 것 같다고.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는 지나간 꿈 속의 곰이 떠올랐다.
문앞에 서 있던 그 곰은 문앞을 한참 지키다가 내가 돌아서는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사실 그 문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가 아닌
한번 열리면 되돌릴 수 없는 순서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그 문을 통과할지 말지는 오직 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문 앞에서 곰과 마주 서 있었다.
소리를 낼 필요는 없었다.
말은 필요가 없었고
이 꿈에서 중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태도의 방향이었다.
내가 들어오게 하거나, 막어서거나 했던 것은
도덕적인 판단도 낡아빠진 감정도 아니었다.
그건 이미 결정된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나의 결정은 선택이 아니라 역할에 주어진
반응처럼 느껴졌다.
곰은 나를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도발도, 저항도 없었다.
그저 계속 서 있지 않기로 걸정한 듯 보였다.
그 결정이 곰의 의지인지
이미 끝나 버린 순서의 결과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곰이 방향을 바꾼 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아이의 시간은 이집에서 조용히 제외되었다.
슬픔조차 정리 되지 않은 채 그저 결과만 남았다.
그제야 꿈이
선택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이야기의 기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막는 자리에
누군가는 돌아서는 자리에
누구가는 아직 도착하지 못하는 곳에
각각 놓여 있었을 뿐이라고.
사람은 종종 자신의 감정을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떤 분노는
결정을 가장한 위치표시에 불과하다.
그날의 나는 막아야 할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다.
운명은 묻지 않는다.
동의도, 이해도 구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역할이 끝날때까지
아무말 없이 유지된다.
그리고 꿈은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고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문이란 단순히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염원이 들고 나는 통로라는 것을.
인간의 간절함이 모여 뜻이 되는 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