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시인
시가 기억의 왜곡으로 집적을 지날 때
길어진 응시로 무척이나 덜컹거릴 때
비 냄새보다 진한 용서로 잉걸불이 될 때
세시를 가리키면서 정처 없이 연탄을 지나고
비에 섞여 있는 먼지가 모조리 기억으로 돌아오는
뭐, 그런 불망나니의 날이 있습니다
날마다 비겁한 계산을 하고
피비린내를 피해 도망가는 오후
집으로 가기 위해 잠깐 더러운 손을 씻고
피 말린 손의 냄새, 이 비의 같은 것
아무튼, 저녁, 그렇게 집으로 숨어드는 시간이면
몸에 향수를 덧뿌리면서 현관문을 여는 것이지요
고소하게 쿠키 냄새나는 오븐 앞에서
흰 밀가루손 어머니와 오래 이야기하고
왜곡을 지나는 기억의 뿌리를 곱게 다듬어
불타는 오븐 속에 넣어 구웠지요
그리하면 피비린내 사라지고
가슴속에 더운 김 오르는 빵 냄새
어머니 냄새가 났지요
다시 '나'가 될 수 있었지요
-<열두 시인 사화집(6)> 창조문예사, 2022. 4. 29. 수록
-시와함께 2023.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