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시인
<머리와 다리 각을 뜬다>
머언 바다 끝에 다다라
푸른 물결 바닷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해저 구석에 쭈그려 앉은 마음이 보인다
두 손을 아래로 툭 떨어뜨리고
힘없이 돌벽에 기대어 있는 사람이 보인다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가버린 시간이 그곳에 당도해
외로워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버릇없이 굴던 날이 빗물을 떨구면서
훌쩍거리는 측은한 소리
바다 끝에 내다 버린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울컥한 울음을 쏟고 있는 오늘이 보인다
외롭고 격하고 못난 불온한 순간이
손을 잡아끌고 깊은 해저를 가리킨다
돌에 걸려 넘어지던 순간이
짠물에 납덩이를 매달고 가라앉아 있다
수중선(水中船)을 띄워야 하나
건져 올려 번제(燔祭)를 올려야 하나
머리와 다리를 따로 놓고 각을 뜨기 위해
예리한 칼을 높이 든다
용서의 마음이 눈앞에 온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계절이 온다
-문학과 사람 2018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