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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Jul 28. 2023

백비*

김신영 시인

 <백비>           


가난한 목숨의 수모를 견디면서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에 실려간 해답을 끌어안고     


해지는 길목에서 젊은 책을 읽어 내려도

반짝이는 눈은 히말라야 소금으로 내린다


높이 올라간 비박지에서 한심하게 한잠 자고     


처음부터 심장이 약한 사람, 그는 아웃렛에서

바겐세일 중인 붉은 심장을 여러 개 사 온다   

  

직관적 사용을 강조하던 사물 의식은

밑줄 긋던 버릇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오늘은 구멍 숭숭 난 돌에 밑줄을 그어대다가     

적힌 것 없는 비석 앞에서 시간을 흘린다


벼랑의 끝에서 쌓아 올린 무적(無籍) 기념비

눈비 쏟아지는 서글픈 하얀 바윗돌 뼈아픈 기억


한 목숨 흔들리다 영원히 잠들어버린 하얀


*제주 4.3 사건의 백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가 문집 2019.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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