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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Jun 12. 2023

점등인의 사명

김신영 시인

별등을 달다

-점등인의 사명  



하늘에 별등을 달고

영혼에 별등을 다는

하나님의 창에도 환한 등을 다는

모든 마음에 별등을 다는 일이

천직인 착한 시인


오늘을 점등하러 골목을 나선다

사람마다 난삽한 영혼의 지도

어둠마다 맑은 별등을 달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신새벽

그대의 마음 창가에도

등이 반짝거리는지 올려다본다


사람들 가슴에 한 빛, 별을 켜는 일

그 천직으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공원을 돌아 나오면

유엔 성냥으로 확 그어지는 불꽃

미욱한 가슴이 조금씩 환해진다


반짝이는 별을 간직한

라디오 진행자가

점등하는 모든 시인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나도 그에게 목례를 한다


<마술상점> 시인수첩 여우난골 2021


그는 점등인이다. 세상에 별등을 다는 시인이다. 하나님의 창에 등을 다는 일이 천직인 시인이다. 사람들 가슴에 한 빛 별을 켜는 일이 그가 시를 쓰는 일이다. 별등을 다는 일? 어디서 봤더라? 아!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읽었지. 그 별은 너무나 작아서 가로등과 가로등 켜는 사람밖에 없었지. 어린 왕자가 그 별에 가서 점등인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도 두 사람이 앉을 공간이 없는 너무 작은 별이어서 어린 왕자는 내심 애석해하면서 그 별에 들르는 것을 포기하지. 맞아... 시인은 점등인이야. 불우리야. 등불이야. 청지기야. 파수꾼이며 순라야. 청사초롱이야. 마음과 세상을 밝히는 연등이야.-장인수 시인


이 시는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14번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 별은 너무나 작아서 가로등과 가로등 켜는 사람밖에 없다. 어린 왕자가 그 별에 가서 점등인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도 두 사람이 앉을 공간이 없는 너무 작은 별이어서 어린 왕자는 내심 애석해하면서 그 별에 들르는 것을 포기한다. ‘점등인의 사명’을 부제로 삼은 이 시에서 김신영은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하늘에 별등을 달고/ 영혼에 별등을 다는/ 하나님의 창에도 환한 등을 다는/ 모든 마음에 별등을 다는 일이/ 천직인 착한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안의 시, 치유의 시를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으로서, 또한 시인이기에 “사람들 가슴에 한 빛, 별을 켜는 일/ 그 천직으로 고된 하루를” 보냈나 보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고단한 일과를 보내고 하는 일이란 것이 겨우 유엔성냥(이런 성냥을 알고 있다니! 시인의 나이가?)을 켜 불꽃을 잠시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미욱한 가슴이 조금씩 환해진다”나. 현대인은 주로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일상에 지친 운전자는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와 그가 들려주는 음악에 피로를 푼다. “반짝이는 별을 간직한/ 라디오 진행자가/ 점등하는 모든 시인에게/ 감사인사”를 보내자 시인도 그에게 목례를 한다. 고맙습니다. 얼마나 좋은 우리말인가.-이승하 시인


화자는 얘기합니다. 하늘에 별등을 달고 영혼에 별등을 다는 하나님의 창에도 환한 등을 다는 모든 마음에 별등을 다는 일이 천직인 ‘착한 시인’이라고요. 제 얘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별등을 다는 착한 시인이라면, 얼마나 더 착해져야만 제가 저 조건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저도 마음 착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사람이 저를 착한 시인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착함이란 상대적이고, 어느 한쪽에 착해 보이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에는 나쁜 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착함의 차이, 관계의 결과물이고 동시에 착함은 ‘나에게 잘해주는 것’으로 갈음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착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욕심 중 최고의 욕심일 것입니다. 또한 착하다는 것은 동시에 가면을 써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내심’이라는 가면이겠죠. 눈에 보이는 손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도된 잘못이 아니라면 참아낼 수 있는 마음의 넓이도 필요할 테니까요. 물론 인내심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도덕적인 일과 부도덕함은 가려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상식’이 있고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라면, 좋은 일도 때로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하늘에 ‘별등’을 다는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짝거림 뿐만이 아니라, 때로 나의 행로를 알려줄 수 있는 지시등 같은 시가 될 수 있도록. 특히 별등 같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한번 읽고 잊히는 시가 아니라, 오랫동안 별처럼 빛날 수 있는 그런 시를요.-주영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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