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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Jun 13. 2023

사막의 꽃

김신영 시인

상처를 잊은 지 오래

너를 잊은 지 오래


네가 사막의 바람을 맞다

사라진 시간보다 더 오래


드디어 폭풍이 밀려온다

나는 그저 모래바람이 실어오는 폭우를

너를 잊어버린 가슴구멍에

하늘만큼 퍼 놓으면 된다


삼천 일*을 거침없이 기다렸다

언제 다시 태풍처럼 불어 닥치는

이 거센 바람을 만날지 모른다


나는 젖은 모래 속에

황급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재빠르게 꽃대궁을 밀어 올렸다.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일곱째 날이면 마른바람을 맞으며

다시 씨로 돌아가 언젠가 오늘이 되기까지


나의 나됨을 지우고  너의 기억조차 모래 속에 묻어 버리고

사막의 비바람을 기다릴 수 있다


시간 속에 나를 묻고

한차례 폭우가 몰고 올 환희의 그날을

그 언젠가 꽃이 되는 일주일을

쓸쓸한 지 오래도록


오롯이

기다릴 수 있다


-「사막의 꽃」(『불혹의 묵시록』, 2007)



화자는 건조해지고 무언가 불안이 가득한 삶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삶의 지속은 화자에게 사막과 다름 아니게 '상처를 잊은 지 오래'되도록 방치된 생을 영위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저 모래바람이 실어오는 폭우를/ 너를 잊어버린 가슴에 가득 퍼 놓으면 된다'라고 하듯이 한줄기 시원한 폭우로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다. 생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삼천 일*을 거침없이 기다렸다'는 화자, 그 기다림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확신을 스스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싹을 틔우고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재빠르게 꽃 대궁을 밀어 올'리겠다는 화자, 그만큼 마음의 다짐이 확고하다. '일주일이면 충분하다'라고 거듭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기다리는 화자다. 그런 연후 '다시 씨로 돌아가/ 언젠가 오늘이 되기까지' 그 '환희의 그날을 / 언젠가 꽃이 되는 일주일을'을 '쓸쓸한 지 오래도록' 그 쓸쓸함을 감당하며 못내 기다리겠다고 기다림마저 당연시한다.


화자가 자기 직분을 다 마치고 '다시 씨로 돌아가/ 언젠가 오늘이 되기까지' 다시 기다린다는 것,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생에서 순리에 맞게 사는 이치까지 성찰하며 폭넓게 자신의 의지를 시현하려 노력한다고 할 수 있다. 

   -유성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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